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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진호 PD의 방송 이야기] ‘설 특집’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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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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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나는 미리 남보다 시간을 두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학문의 즐거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선물해주신 책이다. 제목부터 ‘학문의 즐거움’이라니. 보나 마나 공부 열심히 하라는 내용의 따분한 글일 줄 알았는데, 이후 나의 인생 책이 되었다. 대학 입시 일주일 전까지 밭에서 거름 통을 들고, 대학 3학년이 돼서야 수학의 길을 택한 늦깎이 수학자. 끈기 하나를 유일한 밑천으로, 미국 하버드대로 건너가 박사를 따고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까지 받은 사람. 교토대 교수로 재직했던 저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이야기다. 평범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우직함’과 ‘노력’이라는 무기로 세계적 석학 반열에 오른다.

방송국에도 그 나름대로 날고 긴다는(?) 인재가 모인다. 피 튀기는 전쟁터에서 생존을 가능케 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 역시 ‘노력’이다. 안타깝게도 비범한 천재성을 타고나지 못한 나는 늘 남보다 시간을 두세 배로 써야 했다. PD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5분 분량 자막을 쓰는 데 1시간가량이 걸린다. 90분물로 따지면 자막 작업에만 18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킹덤’ 시리즈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김은희 작가도 먹고 자고 쓰기를 반복하며 ‘엉덩이로 글을 쓴다’고 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에서 인생 연기를 보여준 ‘2PM’ 준호 역시 완벽주의자 정조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몇 달간 닭가슴살 4장과 고구마 4개 식단을 유지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김진호 SBS 예능본부 PD


설 연휴다. 이번 명절에도 방송사마다 시간과 정성과 노력의 결정체인 특집 프로그램을 국민께 선보일 것이다. 잡지 ‘TV가이드’는 1998년 폐간됐지만, 독자들이 일일이 인터넷 검색하는 수고를 덜고, 동료들의 노고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명절 TV가이드를 써본다. TV조선과 MBC는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자사 히트작 ‘엉클’과 ‘옷소매 붉은 끝동’ 특집을 준비했다. KBS, SBS, MBN은 각각 ‘조선팝 어게인’ ‘판타스틱 패밀리’ ‘아트싱어’ 등 음악 프로그램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는 특이점 해소 문제를 해결하며 학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 물론 방송쟁이들이 이처럼 인류에 거창한 기여를 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명절에 모인 가족들이 한 번이라도 깔깔대며 웃고, 대화하며, 감동까지 느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나아가 시청자 게시판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라는 글까지 남겨주신다면? PD라는 단순한 종족(?)은 편집실에서 지샌 수많은 밤을 즐거움의 시간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방송가 이야기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김진호 SBS 예능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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