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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자수첩] 명분도 실익도 위기감도 없는 택배노조의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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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택배노조 CJ대한통운(000120) 본부의 파업이 28일로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올해 설 연휴 물동량이 평소보다 소폭 늘면서 전국적인 물류대란은 피했지만, 파업으로 배달 건수가 줄고 택배노조가 비노조 택배기사의 배달도 방해하면서 일부 기사들은 월 수입이 100만원 이상 줄었다고 한다. 일부 비노조원 택배기사들은 “일하고 싶다”며 서울 여의도에서 집회까지 벌였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일부 기업 고객은 다른 택배사나 물류망으로 이탈하고 있다. 배달 수수료보다 집화 수수료가 더 중요한 택배기사들에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떠나간 고객이 파업 이후에 돌아올 것이란 보장도 없다.

택배노조의 파업 명분도 희미해졌다.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이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파업에 돌입했다. 사회적 합의의 핵심은 과로의 원인으로 꼽힌 ‘분류 업무’를 전담할 인력을 투입하거나, 택배기사에게 분류 업무를 맡길 때 별도의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현장 조사를 진행했는데, 사회적 합의의 이행 정도가 ‘양호하다’고 평가했다.

국토부 발표 이후 한국통합물류협회와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 등은 파업이 명분을 잃었다며 현장에 복귀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택배노조는 국토부의 현장 점검 결과에 대해 “강력하게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설 연휴 이후에도 파업을 이어가겠다고 예고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합의에 따라 인상한 택배요금 대부분을 CJ대한통운이 챙겨가고 있다는 주장만 거듭하고 있다.

파업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도 중단된 상황이라 앞으로도 당분간 택배기사의 생계는 더 빠듯해지고, 고객들의 불편은 커지게 됐다. 택배기사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조직된 노동조합이 오히려 대다수 택배기사의 어려움을 키우는 꼴이다. 비노조원 택배기사들 사이에서 “노조 집행부만을 위한 파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택배업의 핵심인 기업고객을 상대로 한 ‘풀필먼트(Fulfillment·통합물류)’ 시장에는 다양한 유통기업이 뛰어들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당장 쿠팡만 봐도 지난해 국내에 12억달러(약 1조4400억원)를 투자해 물류 인프라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람이 설 자리도 좁아진다. 국내 물류 로봇은 최근 5년간 연 13%가량 증가하고 있다. 로봇 제작업체 관계자는 물류 로봇의 강점으로 “사람과 달리 24시간 쉬지 않고 일한다”고 설명했다.

택배노조가 실익도, 명분도, 위기감도 없는 파업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권오은 기자(ohe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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