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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단독] 독일차들 ‘친환경 역주행 담합’ 의혹…공정위 제재절차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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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차 배출가스 저감 요소수 탱크 크기 줄이기 담합

공정위, 폴크스바겐·다임러·BMW에 심사보고서 발송

EU 집행위, 지난해 같은 사건 1조2천억 과징금


한겨레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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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같이 친환경 기술을 상품에 적용하지 않기로 합시다. 어차피 친환경 상품은 질이 떨어지고 비싸기만 하니 소비자들도 좋아할 거예요.”

어느 날 기업들이 은밀히 모여 이렇게 모의했다고 가정해보자. 기업끼리 경쟁을 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담합’은 원래 위법이지만, 이번에는 소비자들에게도 이로운 담합이니 괜찮을 것이라는 논리다. 눈에 보이는 가격과 달리 환경오염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기업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질까.

환경규제 준수하되 요소수 탱크 일부러 ‘작게’ 담합 혐의


공정거래위원회가 조만간 이에 대한 답을 내놓을 예정이다. 2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공정위 심사관은 최근 독일 폴크스바겐·아우디·포르셰·다임러·베엠베(BMW)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디젤 차량에 장착되는 요소수 탱크의 크기를 제한하기로 합의한 혐의(공정거래법상 담합)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제재 절차에 착수한 것이다. 제재 여부와 수위는 향후 전원회의 심의를 통해 결정된다.

문제된 요소수 탱크는 디젤 차량 배출가스 저감 장치의 일부다. 탱크에서 촉매 변환기에 ‘애드블루’(AdBlue)라고 불리는 요소수를 분사해주면, 엔진에서 내뿜어지는 질소산화물이 질소와 물로 분해된다. 이런 분해 과정 없이 질소산화물이 그대로 배출되면 대기오염과 기후변화를 유발한다. 애드블루 덕에 디젤 차량이 ‘클린 디젤’로 각광받을 수 있었다.

독일 3사는 합의를 통해 요소수 탱크의 크기를 제한한 것으로 조사됐다. 요소수 탱크가 작으면 요소수를 더 자주 보충해줘야 하지만, 요소수 보충 주기도 너무 짧지 않도록 제한했다. 결국 쓸 수 있는 요소수의 양이 그만큼 적어진 셈이다. 요소수 분사량이 적을수록 배출가스 저감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배출가스 규제를 지킨다는 전제 하에 이뤄진 합의로, 이른바 ‘디젤 게이트’와는 무관하다.

한겨레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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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소수 탱크 크기 담합은 소비자 위한 것” 주장 먹힐까


담합의 배경에는 요소수 탱크의 딜레마가 있다. 요소수 탱크의 크기를 늘리면 차량이 크고 무거워져 연비가 떨어진다. 작은 탱크를 보완하기 위해 요소수를 더 자주 보충하게 해도 마찬가지로 소비자 불만이 커진다. 독일 3사의 짬짜미는 결국 환경오염을 줄이는 것보다는 당장 소비자들을 붙잡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셈이다.

이 딜레마는 공정위 심의 과정에서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담합의 위법 여부를 가르는 기준 중 하나는 경쟁제한성이다. 기업들이 경쟁을 하지 않아서 발생한 실질적인 피해가 있는지가 관건이다. 특히 이번의 경우 연성 담합에 해당돼 공정위 심사관의 입증 부담이 더욱 크다. 가격 등을 합의하는 경성 담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폐해가 어느 정도 인정되는 반면, 연성 담합은 경쟁제한성이 크다는 점을 심사관이 보여줘야 한다.

문제는 대기오염이나 기후변화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입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반대로 담합으로 인해 오히려 소비자 가격이 내려가고 차 연비가 좋아졌다는 점은 쉽게 드러난다. 결국 공정위 심사관 입장에서는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됐다는 다소 추상적인 논리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도 독일 3사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유럽의 선례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유럽에서는 경쟁당국도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기존 법리나 경제분석의 틀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요소수 탱크 담합 사건을 조사해 3사에 과징금 총 8억7500만유로(1조2천억원)를 부과했다. 유럽연합에서 기술 개발과 관련된 담합을 제재한 첫 사례다. 당시 집행위는 “이번 사건은 경쟁법 집행도 ‘그린딜’(Green Deal)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앞으로도 이 분야의 반경쟁적 행위를 추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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