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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일사일언] 맥주공장 낮술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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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 가며 자주 보면 관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술을 못 마시지만, 지척에 있는 맥주 공장의 위용에 눈길이 갔다. 10대 시절 처음 서울에 가서 높은 건물을 봤을 때처럼 굴뚝이 늘어선 큰 공장은 웅장했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으니 공장이라는 공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 생산되는 제품에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 매일 사용하는 물건이라도 누가 만드는지 어디서 오는지 생각하면서 쓰지는 않으니까. 맥주 공장 근처에 살다 보니 마트에서 맥주를 보면 우리 동네 공장에서 만든 건가 하고 괜히 생산지를 찾아보고 맞으면 반갑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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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인지 소문인지 맥주는 공장에서 갓 생산된 제품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술을 즐기는 귀촌인 친구 둘과 이를 확인하러 공장 견학을 신청했다. 귀촌인들이 단기 일자리로 근처의 과자 공장이나 만두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말이 있던데 혹시 그런 일자리가 있는지 슬쩍 알아볼 기회이기도 했다.(일자리는 없었다.)

술을 마실 테니 차는 가져가면 안 되고 공장으로 가는 버스도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그래서 걸어갔다. 시골길을 한 시간 넘게 걸어 술 공장을 향해 가는 내 모습이 한량 같아 웃겼다. 맥주 생산량이 줄어든 겨울이라 공장엔 멈춰선 라인들이 많았지만 처음 보는 광경들이 신기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맥주 시음 시간, 정말로 훨씬 신선하고 맛있었는지 나는 직접 알아챌 순 없었지만 친구들은 좋아했다. 귀한 술을 안 마시면 손해인 것 같아 나도 두 번째 잔까지 채웠다.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되려는 찰나 우리를 안내해주셨던 분이 당황한 표정으로 일정이 끝났다고 말씀하신다. 아, 여기서 계속 공짜 술 먹으면서 놀 수는 없는 거였지.

정신을 퍼뜩 차리고 두 번째 잔을 급하게 들이켰다. 가더라도 다 마시고 가자! 대안적인 삶이니 자연과의 교감이니 하며 도시에서 온 귀촌인 셋이 낮술 먹고 취해서 휘청휘청거리며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날도 있는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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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7년차 이보현씨. '귀촌하는 법' 저자/이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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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현 '귀촌하는 법'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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