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등록하는 외국 간호사 30년래 최대"
간호사 대거 양성하는 필리핀도 간호사 부족 현상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의 마르티니 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각국에서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자 고소득 국가들은 아프리카 등 저소득 국가의 의료 전문 인력들을 대거 채용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가뜩이나 의료진이 부족한 저소득 국가는 의료 인력난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감비아 수도 반줄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놓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 유럽·북미 국가들 의료진 이민 기회 확대
보도에 따르면 유럽과 북미 국가들은 의료 전문 인력들을 위한 이민 신속 절차를 만들었고, 이들의 의료 자격을 인정해주는 절차도 앞당기고 있다.
영국 정부는 부족한 의료 인력을 메우기 위해 2020년 해외 의료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패스트 트랙 절차 '헬스 앤드 케어 비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 의료 인력을 대상으로 비자 발급 비용을 낮추고 절차를 빠르게 하는 혜택을 포함한다.
영국은 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간호사 일자리 10개 중 1개가 공석일 만큼 의료진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덕분에 영국에서 등록하는 국제 의료 인력은 많이 늘어났다.
영국의 보건 서비스 자선단체 '헬스 파운데이션'(Health Foundation)의 제임스 뷰캔은 2020년 중반 이후 영국에서 일하기 위해 등록하는 국제 간호사 수가 급증했다며 "지난 30년 내 가장 많은 수"라고 설명했다.
캐나다도 코로나19로 급격히 고갈된 의료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수련의 과정을 위한 언어 자격요건을 완화했고, 외국 간호사 자격을 인정하는 절차도 단축했다.
이 밖에도 일본은 임시 노인요양보호사들이 일본에 들어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독일은 외국에서 훈련받은 의사들이 보조 의사 자리로 바로 옮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해외 의료 인력을 채용하지 않던 핀란드도 이들의 이민을 늘리고 있다.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 마련된 임시 병상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 아프리카·아시아 간호사 채용 이민으로 대거 떠나
고소득 국가들의 이런 정책은 상대적으로 의료 시스템이 취약한 저소득 국가 의료진의 대규모 유출을 가져오고 있다.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의 개업의 브라이언 삼파 박사는 최근 영국 이민을 위한 첫 단계인 어학 시험을 시작했다.
삼파 박사가 일하던 지역은 인구 8만명이 거주하지만 의사는 그 혼자였으며 응급 수술을 위해 수술실에서 24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월급은 1천달러가 안 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구 1천명당 의사가 최소 1명은 있어야 한다고 권고하지만, 잠비아에서는 거의 1만2천명당 의사가 1명뿐이라고 NYT는 전했다.
필리핀과 인도는 이전부터 해외 인력 수출을 위해 대규모로 간호사를 생산하는 나라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국내 간호사 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마닐라의 한 대형 병원에서 일하다 코로나19 임시 병동으로 옮긴 간호사 마이크 노베이다는 "우리 병동에는 15명의 간호사가 있지만 이들 중 절반은 해외에서 일하기 위한 지원서를 갖고 있다"며 "그들은 6개월 후에는 떠날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국제 간호사 채용 에이전시 오그레이디 페이턴 인터내셔널의 시너드 카베리 회장은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과 필리핀에서 매달 1천명의 간호사가 미국에 도착하고 있으며 비자를 받기 위해 전 세계에 있는 미국 대사관 인터뷰를 대기 중인 외국인 간호사만 1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의료 시설의 수요가 30년 만에 최고라고 덧붙였다.
국제간호사협의회(ICN)의 하워드 캐턴 수석 대표는 "우리는 (의료진의) 국제 이주가 많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고 있다"며 "매우 위험한 점은 간호사가 가장 풍족한 나라들이 간호사를 모집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영국 런던 토마스 병원의 백신 접종 센터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 코로나19 이전부터 의료진 이동 늘어…"이주 자유 보장해야" 의견도
이처럼 저소득 국가의 의료 종사자들이 고소득 국가로 이주하는 현상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부터 증가하는 추세였다. 보건 인력 문제 전문가인 조르지오 코메토 박사는 이 같은 이주가 "2016년 기준 10년 전보다 60% 늘었다"고 말했다.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에이즈 등의 문제로 의사와 간호사가 대거 이탈하자 WHO 회원국들은 2010년 '국제 보건의료 인력 채용에 관한 실행 규정'을 채택했다.
이 규정은 개인의 이주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부유국들이 의료진을 모집할 때는 이들의 모국 보건부가 참여하는 협정을 통해 진행되도록 하고 있다.
또 채용하는 국가는 인력을 제공하는 국가가 요구하는 의료 정책을 지원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채용된 의료 인력들이 되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 프로그램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캐턴 대표는 "채용된 간호사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오히려 그들은 다른 가족들을 데려오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저소득 국가의 의료 종사자 이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싱크탱크 글로벌개발센터(CGD)의 국제 이민 전문가 마이클 클레멘스는 개발도상국의 의료진 유출을 우려하다 개인의 권리를 무시할 위험이 있다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채용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윤리적 범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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