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스님 일대기·근현대 불교사 담아…"종교가 세상의 빚이 아닌 빛이 돼야"
월정사 원행스님 |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한암스님(1876∼1951)은 선(禪)과 함께 교(敎)를 중시해 공부에도 크게 매진했던 승려다. 한국 불교를 중흥했던 경허스님의 여러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스승으로부터 유일하게 '지음자(知音者)'로 불렸다. 경허가 자신을 가장 잘 알았던 도반으로 여긴 것이다.
1925년 세상을 뒤로 하고 오대산으로 홀연히 들어간 한암은 27년간 동구불출(洞口不出)하며 그 자리에서 수행을 이어갔다.
한국전쟁 때 모두가 피란을 갈 때도 오대산을 지켰다. 군인들이 적군의 은신처로 이용당할 수 있다며 사찰 법당을 불태우려 할 때 불상 앞에서 합장하며 꼿꼿이 앉아 법당 소실을 막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수행으로 일관했던 고승은 전란 중이던 1951년 좌탈입망(座脫立亡, 결가부좌한 자세로 입적)했다. 벽에 기댄 채 마지막으로 '여여(如如)하라'는 말을 남기고서 열반에 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처음과 끝이 한결같았던 수행자로서 마지막 말이었다.
조계종 원로로서 오대산 월정사에서 수행을 이어온 원행스님이 한암의 일대기를 그린 '성인(聖人) : 한암 대종사'를 펴냈다.
한암의 발자취부터 구도의 길에서 마주했던 깨달음의 순간을 담았다. 스승 경허와 나눴던 서신, 같은 스승에서 났으나 '남 만공, 북 한암'으로 불리며 대조적인 선풍을 보였던 만공스님과 인연, 일제강점기와 6·25 전란 속 한국 불교사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한암스님 생애와 근현대 불교사가 주를 이루지만, 우리 역사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내용이다. 경어체로 풀어낸 원행스님의 글에서는 독자에 대한 배려도 느낄 수 있다.
원행스님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기자회견에서 "평생 산속에서만 수행했던 한암스님의 일대기를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에세이 형식으로 풀었다"며 "높고 낮음을 떠나 누구나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경허에서 한암, 탄허로 이어지는 법맥을 물려받은 원행스님은 지난 시절 여러 거처에서 수행과 불사를 반복해왔다. 1980년 10·27 법난 때는 고초를 겪었고, 한때는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판을 지키는 장주 소임을 맡기도 했다.
불교대학을 개설하며 인재양성에 관심을 가졌고, 원주경찰서 경승실을 마련해 대중 포교에 힘쓰기도 했다. 현재는 오대산 월정사 심검당에 주석하며 지난 수행의 희비를 회고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2년 넘게 장기화하면서 그가 준비해온 한암 대선사의 이야기도 차일피일 미뤄지며 세상에 내놓는 데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코로나'라는 혼란의 시대에 그가 한암의 사상과 생애를 드러내고자 하는 이유는 뭘까.
"포스트 코로나는 엄청난 격변의 시대로의 진입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시대의 흐름은 이미 바뀌었습니다.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합니다. 종교가 '빛이 되어야지 '빚'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암스님의 선어와 법문이 새로운 지혜를 열어주길 기도하며 이 책을 모든 독자께 바칩니다."(책 머리말 중)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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