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사각지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렸고, 읽을 수 없던 ‘행간’이 보였다. 상식을 ‘역지사지’하는 능력이라고 말하던 선배의 말처럼 나는 타인의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짐작건대 그 순간이 내가 작가로 다시 태어났던 때였던 것 같다.
축구 경기에서 골이 터지면 골을 넣고 환호하는 선수의 얼굴이 아니라, 일그러진 상대편 골키퍼의 얼굴이 먼저 보였다. 누군가의 성공보다는 실패에 훨씬 더 마음이 갔다. 소치 동계 올림픽 때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었던 건, ‘김연아’의 완벽하게 아름다운 점프가 아니라,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 실패였다.
그때, 마오가 엉덩방아 찧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김연아 같은 완벽한 선수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오로지 트리플 악셀을 해내는 것뿐이라, 실패할 걸 알면서도 도전하는 ‘그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스스로를 ‘태릉선수촌의 유령’이라고 말했던 스케이터 이규혁이 마지막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은퇴를 선언한 후, 기자에게 했던 말도 기억난다. “안 되려는 걸 하려니까 슬펐어요”라는 가슴 무너지게 아픈 말.
‘가장 잘하고, 가장 사랑했던 것’에서 우리가 더 많이 상처받고, 성장한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끝내 어른이 되어간다. 활짝 핀 꽃이 이토록 아름답고 귀한 건, 그 아름다움이 곧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걸 아는 사람처럼.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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