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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화보다 인간 슬픔 담긴 세속화에 더 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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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장동훈 신부가 인천교구 공장 담벼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장동훈 빈첸시오 신부(48)는 교회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다. 교황청립 이탈리아 우르바노대학과 그레고리안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시에 그는 가톨릭계에서 미술 전문가로 통한다. 독학으로 체득한 그의 미술 지식은 이미 유명하다. 그가 이번에 낸 책 '끝낼 수 없는 대화'(파람북 펴냄)는 뛰어난 미술 에세이다.

"청소년 시절 미대에 진학하고 싶어서 입시미술 전문 학원에 다녔어요. 그런데 입시미술이라는 게 예술이 아닌 기술을 익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본당 신부님에게 사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예'라고 대답했죠. 막연하게 가난한 사람을 위한 삶이나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장 신부는 세계적인 명화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에 시달렸다. 신학교 방학을 이용해 꾸준히 외국 미술관을 찾아다녔다.

"신학생 담당 신부님께 말씀드렸더니 다녀와서 전교생 앞에서 보고회를 여는 조건으로 허락하셨어요. 여행 경비를 구하기 위해 짜장면 배달, 전단 배포, 프라이팬 공장 보조까지 별의별 아르바이트를 다 했어요."

장 신부가 이번에 낸 책은 다른 성직자들의 미술 에세이와는 다르다. 그는 책에서 이른바 '성화(聖畵)'가 아닌 세속화를 주로 다룬다. 그림 주인공들은 신이나 성인이 아닌 인간이다. 밤에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 총살당하는 황제, 실패한 혁명가, 얼떨결에 모델이 된 여인, 무심한 듯한 이웃들이 등장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후 가톨릭은 교회가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기쁨과 슬픔, 고통과 희망을 겪는 존재여야 한다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담긴 그림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장 신부의 책은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서 기다림이나 고독을 읽어내지만 장 신부는 조금 더 들어간다.

"호퍼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은 낭만이 아닌 존재의 비참함입니다. 인간은 도시로 대표되는 산업문명을 건설했지만 불행히도 그곳에 인간이 쉴 자리는 없습니다. 호퍼의 그림에는 자연으로부터 추방되고 문명이라는 공간에 유폐된 현대인의 초상이 존재합니다."

현재 인천가톨릭대 교수로 사목하고 있는 장 신부는 사회운동에도 열심이다. 그는 인천교구 사회사목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제가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길에서 만난 걸인을 집에 데리고 오셨어요. 안방에 밥을 차려주고는 편하게 드시라고 문을 닫고 식구들은 마루에 나와 있었어요. 그때 제가 불평했더니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우리도 안방에서 밥을 먹잖니.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대접받아야 한단다.' 아버지의 그 말씀과 태도가 잊히지 않아요."

장 신부는 첨단 물질문명시대 종교가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교회가 너무 게으르다"고 지적한다. "물질과 풍요에 압도되면서 인간조차 도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수천 명이 일터에서 죽어가도 우리는 무심하기만 합니다. 기후재앙이 코앞에 왔는데도 남 일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다들 앞만 보고 질주할 때 잠시 멈춰 생각하자고 호소하는 게 종교여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인간은 덧없지만 그럼에도 너무 아름다운 존재'임을 종교는 힘줘 이야기해야 합니다. "

직접 본 수많은 그림 중 최고를 하나 꼽아 달라고 하자 장 신부는 이탈리아 파도바에 있는 스크로베니 경당을 꼽는다.

"건물 내부 전체가 조토 디본도네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돼 있어요.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우주 공간에 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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