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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1500년 잠 깬 13글자…한반도 ‘가장 오래된 문서’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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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안

백제인 살던 몽촌토성서 목간 나와

한 면에 10~13자 기록 윤곽


한겨레

서울 송파구 몽촌토성 집수지에서 발견된 국내 최고 추정 목간의 모습. 한성백제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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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반도에 살던 선조들이 쓴 가장 오래된 나무쪽 문서 기록이 세상에 나왔다.

1500년 전 지금의 서울 땅에 살던 고구려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 최고의 나무쪽(목간) 기록물이 발견됐다. 목간은 종이가 없거나 귀하던 고대 시기 중국과 한반도, 일본 등지의 사람들이 나무쪽을 평평하게 다듬어 종이 대용으로 썼던 특유의 기록 문서다.

한성백제박물관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몽촌토성에서 5~6세기 성안에 살던 고구려인들이 적은 것으로 보이는 목간 한점을 찾아냈다고 18일 발표했다. 목간은 성터 안에 있는 집수지(우물)의 펄에서 나왔다. 길이 15.6㎝, 너비 2.5~2.7㎝, 최대 두께 0.4㎝로, 한쪽 면에 10~13자 정도의 윤곽이 보인다. 최근 박물관 의뢰를 받은 한국목간학회 연구자들이 목간을 분석했으나 훼손과 변형이 심해 글자와 문장의 실체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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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이 집수지 펄에서 출토된 당시 모습. 한성백제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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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낸 자료를 보면, 목간은 5세기 말~6세기 초 고구려 사람들이 쓴 문서일 가능성이 크다. 고구려 목간임이 공인되면 역대 최초로 고구려 목간 문서가 출현한 셈이다.

몽촌토성은 1~4세기 초기 백제시대 풍납토성과 함께 도읍 한성(서울)의 왕성으로 유력한 유적이다. 그러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백제 침략 당시 함락돼, 551년 백제·신라 연합군에 의해 탈환될 때까지 고구려 군대와 관리들이 머물며 살았던 것으로 학계는 생각해왔다.

목간이 나온 집수지가 원래 백제인들이 팠던 것을 고구려인들이 확충한 유적이고, 주위에서 고구려 토기가 주로 나왔으며, 집수지를 축조하는 데 쓰인 목재와 내부 출토 목재 등을 방사성탄소연대 측정법 등으로 분석한 결과 또한 고구려인이 성을 지배했던 시기인 469~541년으로 연대가 나온 것도 고구려 목간설의 근거가 됐다는 설명이다.

1990년대 이래 한반도에서 발견된 목간은 모두 6~7세기 백제와 신라에서 쓴 것들이다. 신라 목간은 한반도 목간의 보고로 꼽히는 함안 성산산성과 경주의 신라왕성터인 월성, 얼굴 모양 토기가 함께 나온 경산 소월리 유적 등에서 나왔다. 백제 목간은 부여 관북리 등에서 출토된 행정문서 목간과 ‘구구단’ ‘논어’ 목간 등이 알려져 있다. 앞서 1990년대 북한 평양 정백동 낙랑시대 무덤에서 기원전 1세기 호구 기록이 적힌 목간이 나왔지만, 학계에서는 이 땅의 선조가 아닌 중국인 관리들의 기록물로 간주하고 있다. 박물관 쪽은 출토 목간의 세부 발굴 성과를 2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목간학회 주최 학술회의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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