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팀장칼럼] ‘국민만 보겠다’던 공수처장의 씁쓸한 1주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이미호 법조팀장




“검찰과 경찰도 (통신자료 제공요청을) 많이 하는데 왜 공수처만 갖고 사찰이라고 하느냐.”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은 억울해 보였다. 통신조회로 촉발된 ‘사찰 논란’ 이후, 수사기관의 장이 첫 공개석상에서 내놓은 발언이라고 하기엔 실망스러웠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에 따르면 공수처를 비롯한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재판·수사 목적으로 전기통신사업자(이동통신사)에게 서비스 이용자의 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 위법은 아니지만 고위공직자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가 비판적인 보도를 전한 기자와 기자의 가족, 일반 시민, 대학생 등 민간인에 대한 개인정보를 ‘저인망식 수사’로 과도하게 수집한 것은 석연치 않다.

사실 이는 통상적인 수사방식과도 거리가 멀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수사를 20년 가까이 했지만 기자 대상 통신조회를 해 본 적이 없다”면서 “보통 수사할 때 상대방이 누군지 다 보자는 식으로 탐색적으로 하지 않는다. 특정 누구와 통화가 있었는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본사 기자인 본인과 후배 기자들의 지난해 하반기 통신자료 내역 수집 주체를 살펴보면 공수처뿐 아니라 서울중앙지검과 경기남부경찰청 등 검찰·경찰도 포함돼 있다. 다만 ‘검찰개혁’과 ‘인권수사’를 표방하며 탄생한 공수처가 국민들을 상대로 과거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은 검경의 통신조회와는 결이 다르게 다가온다. 수사상 필요성을 내세우며 ‘통신조회 불가피론’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수사편의주의에 기대고 있을 뿐 아니라(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적) 국민의 기본권을 공수처가 소홀히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수처는 지금까지 고위공직자를 구속하거나 기소한 적이 없다. 말 그대로 ‘0건’의 실적을 올렸는데, 앞서 실시한 수많은 통신조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과 관련해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 청장의 발언대로 “현재 수사 중인 고발 사주 의혹 때문”이라면 한 사건에 8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과 40명이 넘는 언론인 및 언론인의 가족, 인터넷 카페 커뮤니티 회원들, 대학생 등 민간인까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통신자료 수집이 과연 꼭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정말 특정 수사와 관련해 필요한 내용이었는지, 아니면 목표를 이미 정해놓고 ‘관련자들을 싹 다 뒤지겠다’ 식의 전방위 조회였을까. 자신의 통신자료가 제공됐다는 것을 안 50대 주부(한동훈 검사장 팬카페 회원)는 “너무 황당하고 또 무섭다”고 했다. 대학생들은 대자보를 붙이고, 아사히신문 등 외신 기자들은 “납득할 만한 해명을 달라”고 성토하고 있다. 통신조회 대상이 된 변호사들은 헌법소원을 고려 중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공수처장의 태도다. ‘우리보단 검경이 더 심해’라는 항변은 국민들의 눈살이 찌푸려진 발언이었다. 오히려 통신조회의 경위와 이유에 대해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했어야 했다. 공수처는 곧 출범 1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입을 꾹 닫고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하는 모양새다. 기념행사도 비공개로 치르고, 기자간담회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년 전 이맘때 “국민만 바라보고” “권한을 절제해 행사하고” “인권친화적 수사를 하겠다”던 김 처장의 취임사는 공염불이 됐다.

[이미호 법조팀장]

이미호 기자(best222@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