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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숙적 도요타에 '한일전' 이긴 현대차, 복병에 발목잡혔네 [신짜오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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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베트남 업체 빈패스트가 만드는 소형차 파딜. /사진제공=빈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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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176] 현대자동차가 베트남에서 3년 연속 도요타를 제치고 자동차 판매 1위를 기록했습니다. 동남아 자동차 시장을 휩쓰는 도요타의 아성을 딛고 거둔 쾌거입니다. 하지만 베트남 베스트셀링카 1위 자리는 놓쳤는데, 놀랍게도 1위는 베트남 브랜드였습니다.

베트남자동차산업협회(VAMA)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한 해 동안 자동차 7만518대를 판매해 베트남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판매한 업체 랭킹 1위에 올랐습니다.

베트남에서 현대차 신화가 본격적으로 쓰인 건 2019년부터입니다. 현대차는 2019년 총 7만9568대를 팔며 240대 차이로 도요타를 제쳤습니다. 2020년에는 베트남에서 총 8만1000대를 팔아 1만대 차이로 넉넉하게 도요타를 이겼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자동차 부품 수급이 쉽지 않은 가운데 지난해 현대차가 거둔 성과는 평가할 만합니다. 지난해 2위는 도요타가 차지했는데 1년간 6만7533대를 팔았습니다. 현대차와의 격차는 2020년 대비 좁혀졌지만 3위인 기아가 4만5532대를 판 것을 감안하면 현대차·기아와 도요타 간 격차는 '더블스코어' 가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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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베트남 시장에서 선전하는 것을 칭찬해야 하는 이유는 동남아 자동차 시장에서 일본이 가진 압도적인 지배력을 딛고 거둔 성과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기준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일본차 업체의 점유율은 도요타(30.3%), 다이하쓰공업(17.1%), 혼다(13.8%) 등을 합쳐 97%에 달합니다.

태국 자동차 시장에서 일본 업체 비중은 88%입니다. 동남아 시장을 통째로 합쳐 현대차 점유율은 5% 안팎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베트남 시장에서 1위를 했기 때문에 5%라도 나오는 것이지 베트남만 벗어나면 순위권에 현대차·기아 이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등산을 하려면 베이스 캠프가 있어야 합니다. 현대차 입장에서 동남아 등정을 하려면 베트남을 베이스캠프로 삼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현대차의 선전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차는 아쉽게도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판 차 1위에 이름을 올려놓지는 못했습니다. 베트남 자국 브랜드 빈패스트(VinFast)의 파딜(Fadil)이 판매량 2만4128대로 1위를 차지한 것입니다.

2위는 현대 엑센트(1만9956대)였고, 3위는 도요타 비오스(Vios)로 1만9931대 팔렸습니다. 이어 4위는 도요타 코롤라(1만8441대), 5위는 기아 셀토스(1만6122대)가 차지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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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그룹의 자회사 빈패스트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2019년 첫 완성차를 만들어낸 신생 업체인데, 파딜의 선전과 함께 지난해 베트남 카메이커 순위 4위(3만5723대)에 올랐습니다.

5위 마쓰다(2만7286대), 6위 미쓰비시(2만7243대), 7위 포드(2만3708대), 8위 혼다(2만1698대)를 비롯한 쟁쟁한 업체들을 모두 제친 것으로 단기간 놀랄 만한 내수 시장 확장을 일궈낸 것입니다.

물론 파딜이 잘 팔린것은 빈패스트의 대대적인 프로모션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유가 프로모션이든, 마케팅이든 한 대에 수천만 원 하는 고가의 빈패스트 자동차를 베트남 국민들이 많이 샀다는 팩트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아무리 가격을 깎아주고 선물을 얹어주고 하더라도 시장의 판단은 냉정합니다. '도저히 못 탈 수준'이라고 평가받으면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를 밑도는 베트남 국민들이 비싼 빈패스트 차를 살 수 없습니다.

빈그룹이 자동차와 함께 쌍두마차로 밀던 스마트폰(빈스마트) 사업을 깨끗하게 접은 것도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힘들 것이란 냉정한 현실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빈패스트가 비교적 조기에 자국에서 베스트셀링카를 뽑아낸 것은 가볍게 볼 상황은 아닌 것입니다.

빈그룹 입장에서는 빈패스트 브랜드가 자국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았다고 판단한 후에 인접 동남아 국가로 본격적인 확장을 시도할 공산이 큽니다. 이미 빈패스트는 CES 2022에서 "전기차 업체로 변신해 미국 시장을 공략하겠다"며 큰 포부를 드러냈습니다.

자동차 강국인 한국 입장에서는 '후발 주자가 열심히 하네'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현대차도 시작은 일본차를 껍데기만 바꾸고 모조리 베끼는 수준의 한미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베트남이 과거 한국처럼 하고 있지만 몇 년 뒤 기술력이 크게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현대차가 동남아에서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이 미미한데, 앞으로는 거대한 산인 일본은 물론 신생 업체인 베트남과도 싸워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빈그룹의 자동차 시장 진출 이면에는 베트남 정부의 지원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개발도상국인 베트남이 소비재 산업에 머물지 않고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에 뛰어들어 산업 발전을 이끌려는 모습은 그 나름대로 평가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몸부림치며 경제구조를 바꾸려는 베트남의 모습이 조선 불모지에서 세계 조선 산업 1위 신화를 일궈낸 정주영과 닮았다고 하면 오버일까요. 정주영이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면서 영국 차관을 끌여들여 지금의 현대중공업을 탄생시킨 일화는 유명합니다. 지금은 빈패스트의 분전이 별것 아닌 듯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들 역시 세상을 바꿀지 모를 일입니다.

[홍장원 기자(하노이 드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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