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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민자에게 자영업이란? 아차하다 오답노트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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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제의 ‘경계인’

[경향신문]

얼마 전 한국 언론인 두 사람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 정년이 되어 퇴직을 한다는 평범한 내용이었는데, 내 연배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두 사람은 언론계에서만 줄곧 32년, 33년을 일했다고 했다. 한 분야에서 그토록 오래 일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성실한 데다 능력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그 일이 본인들에게 잘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겹기는 했으되 진작에 떠날 만큼은 아니었겠고 전문성을 쌓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기도 하고 나쁜 사람들이기도 하다. 다른 분야로 건너가 ‘맨땅에 헤딩’할 일은 없었다는 사실로는 운이 좋았겠고, 다른 분야를 직접 경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나쁘다고도 볼 수 있겠다.

경향신문

캐나다 최강 커피 프랜차이즈 팀호턴스. 팬데믹 상황에서도 손님들이 수시로 드나들 정도로 인기다. 이 커피점이 새로 문을 열면 주변의 커피점, 샌드위치점 같은 관련 가게들의 매출이 뚝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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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로 옮겨온 내 처지에서는, 그들이 진짜로 운이 좋은 사람들로 보였다. 어떤 이유에서건 낯선 곳에서 새롭게 출발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 따르는 행위이다. 기자생활을 할 적에는 ‘돈벌이’ ‘밥벌이’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공직은 아니지만 공적인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사회로부터 대접 혹은 관심(칭찬이든 비난이든)을 받았고, 우리 연배에서는 비교적 인기 있는 직종에 종사했다는 사실 등등은 언론계를 떠난 다음에야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기자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역 시절 세상물정 다 아는 듯하던 기자들은 사표를 내고 사회에 나오는 순간 숙맥이 되기 십상이다. 어디를 가든 대접을 받던 관성을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남보다 정보를 더 빨리 많이 안다는 이유로 ‘잘난 척’하던 습성도 남아서 세상살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팍팍해질 수도 있다. 물론 좋은 곳으로 영전해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회사를 떠난 지 십 수 년 만에 만난 어떤 선배는 “기자 그만두고 좀 힘들었지?”라는 말을 인사처럼 했다. 나는 말뜻을 쉽게 알아들었다. 말하자면 남들 앞에서 ‘가오’ 잡으며 일해 버릇하다가 자영업의 세계로 들어오고 보니 초보도 그런 초보가 없었다. 나 스스로 아무것도 모르는 숙맥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빨리 인정해야 그만큼 일찍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이른바 ‘대접받는 화이트칼라’였던 사람들의 폭망 사례는 차고 넘칠 만큼 많다
실패 없는 ‘확실한 길목’이라고 해서 개업했더니 그 업계의 ‘프랜차이즈 공룡’이 코 앞에 문을 연다
속 마음을 터놓고 지낼 만큼 친했던 사람에게 ‘덤터기’를 당하기도 일쑤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듯’ 한다지만…타국에서 창업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지뢰밭’이다

처음에는 정말로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배웠다. 비슷한 시기에 이민을 온 한 친구는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그 친구가 하는 공부나 내가 하는 공부나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내 가게를 열고 본격적으로 밥벌이를 하게 된 것은 이민을 온 지 꼭 4년 만이었다. 4년이라는 햇수가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기분이었다.

초보자에게 4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짧은 기간 성적을 확실하게 올리는 방법은 정공법이다.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오답노트’였다. 한국에서 내가 했던 일이 판매나 영업처럼 직접 돈을 벌어들이는 일과는 무관한 것이어서, 나는 여기서 남들이 자영업을 어떻게 시작했나 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야 했다. 실패 사례는 더 중요하게 여겨야 했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한국에서 이른바 ‘화이트칼라’로 일한 사람들의 실패 사례는 차고 넘칠 만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나처럼 자영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례를 주고받았는데, 그것은 오답노트를 공유하는 것과 같았다. 사례를 듣다보면 자영업의 세계는 지뢰밭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운이 나쁘면 지뢰를 밟을 수 있었다. 그래도 어떤 지뢰들이 어떤 지점에 어떻게 숨어 있는가 하는 것을 가능한 한 많이 알아야 했다. 오답노트는 그런 면에서 정말 유용했다.

예전에 들어서 기억하는 오답노트 가운데 몇 가지를 적어보면 이런 내용들이다. 이민을 오기 전부터 나는 커피점에 관심이 많았다. 토론토에 살러오니 팀호턴스라는 커피 프랜차이즈가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팀호턴스가 새로 문을 열면 근처 먹거리 가게 매출이 절반 아래로 뚝 떨어진다는 말이 있었다. 사실이 그랬다. 이 커피점은 도넛과 샌드위치, 심지어 수프까지 만들어 팔았다. 캐나다의 전설적인 하키 선수 이름을 상호로 사용해서 그런지 몰라도 캐나다 사람들의 충성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았다. 세계 최강 스타벅스조차도 캐나다 동부에서는 팀호턴스에 눌려 맥을 추지 못했다.

팀호턴스는 초기 이민자에게 가맹점을 절대 내주지 않았다. 캐나다에서의 비즈니스 경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이 커피점을 직접 운영하지는 못해도, 이 커피점으로 인해 피해 보는 일은 피해야 했다. 나뿐 아니라 커피점이나 샌드위치점 같은 관련 업종에 종사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은 팀호턴스의 위치에 신경을 많이 썼다. 팀호턴스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례들은 당연히 공유되었다.

이런 사례가 있었다. 나 같은 어느 이민자가 매출이 좋은 C프랜차이즈 커피점을 인수했다. 그는 인수한 지 단 몇 개월 만에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한 블록쯤 떨어진 건물에서 가림막을 치고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팀호턴스 입점을 위한 공사였다. 팀호턴스가 문을 열자마자 C프랜차이즈 커피점의 매상은 곤두박질쳤다. 전 주인이 그런 사실을 알고 가게를 팔았는지, 모르고 팔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운 좋게도 그런 위험에서 벗어난 이야기도 들었다. 그 주인공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몇 년 동안 가게를 찾다가 목 좋은 자리의 베이글점이 ‘급매’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갔다고 했다. 평소 자기가 운영해봤으면 했던 가게이고 마음도 급한 터여서, 주인이 말하는 매각 이유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가게를 급하게 팔 때는 흔히 ‘급거 귀국’ 같은 개인적인 사정을 많이 내세운다. 가게 매매는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러 변호사 사무실에 가기 전, 한번만 더 둘러보자며 가게 근처에 갔다가 이웃 가게 사람들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다음달에 이 근처에 팀호턴스가 들어온다.” 확인을 해보니 사실이었다. 베이글 가게를 팔려던 주인은 그 사실을 미리 알고 다른 사람에게 그 부담을 떠넘기려 했다는 얘기였다.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가게를 살 때는 ‘도의’니 ‘신의’ 따위는 아예 없다고 믿는 편이 낫다. 오답노트를 작성하면서 했던 생각이다. 어떤 선배는 “덜 속고 사면 성공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자영업 희망자를 눈속임하는 경우는 허다했다. “새로 온 이민자를 돕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투자를 받은 다음 몇 년 만에 파산하는 경우도 몇 번 보았다.

한국에서의 화려한 학력과 이력을 내세우며 제시하는 장밋빛 청사진에 혹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 꼬임에 넘어가면 떼이는 돈도 돈이지만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몸까지 망가지기 십상이다. 조건이 너무 좋으면 반드시 의심을 해야 했다. 그건 세상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그걸 잘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한국의 어느 대기업 출신 이민자가 일식당 주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비슷한 음식점에 들어가 몇 년 동안 일을 했다. 알고 보니, 식당 주인은 동향에다 고교 선배 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친형제만큼이나 가까워졌다. 외국에서는 쉽게 그렇게 된다. 양쪽 집을 오가며 가족들끼리도 자주 어울렸다.

어느 날 그 선배가 “식당을 인수하라”고 제안했다. “나는 돈을 벌 만큼 벌었다. 지겨워서 더 이상 못하겠다. 네가 식당을 운영하고 싶어 하고, 우리 식당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내 입장에서는 너 같은 인수 적임자도 찾기 어렵다.” 이런 말도 당연히 덧붙였다. “네가 인수를 하든 안 하든 식당을 팔 예정이다. 네가 서운해할까 봐 너한테 먼저 말하는 거다. 너라면 ‘매상체크’나 ‘트레이닝’ 같은 번거로운 절차를 안 거쳐도 되니까 나한테도 좋고.”

이쯤 되면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다. 외국 땅에서 만나 친형제처럼 교류해온 이가 나를 속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선배라는 사람은 제안을 하나 더 했다. “서로 잘 아는 처지이니 중간에 사람들(양쪽 변호사) 끼우지 말고 우리끼리 그냥 계약서 쓰자. 변호사 비용으로 술이나 먹자.” 매매의 중간에 끼는 변호사들은 조건을 검토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이다. 변호사 비용이 한국 돈으로 각각 100만원 이상씩 되던 시절이었다.

가게 매매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권리금도 시세보다 몇 만 달러 깎아줬다. 가게를 인수하고 나서 몇 달 후에야 후배는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식당은 프랜차이즈였는데, 본사가 그 지점을 폐쇄한다는 방침을 통보해왔다. 건물주와 임대차 (재)계약을 하는 주체는 가맹업주가 아니라 프랜차이즈 본사이다. 모두가 하는 대로 계약서를 쓰면서 변호사 도움을 받았더라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최악의 조건’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가게를 인수할 사람은 없다. 사람의 말을 의심하지 않아서 생겨난 사달이었다. 속인 자가 나쁜 사람이기는 하지만 단죄할 방법은 없다.

이런 일들은 캐나다 자영업계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빈번하게 벌어질 것이다. 오답노트에 적을 일들이 많다보니 “속는 사람이 바보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한국의 자영업 세계도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른바 ‘펜대나 굴리던 숙맥 같은 사람들’이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자영업을 하겠다며 의견을 물어오면 나는 웬만하면 하지 말라고 말린다. 더군다나 대자본 프랜차이즈가 대세인 환경이다 보니, 개인이 할 수 있는 업종도 별로 남아 있지 않다. 한국에서 오는 이민자도 많이 줄었지만 자영업에 종사하겠다는 한국 사람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나와 가까운 후배들만 봐도, 기업이나 기관에 취업하여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경향신문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성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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