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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홍콩 대규모 시위

홍콩, 민주화 운동 흔적조차 안 남긴다…대학들, 톈안먼 시위 기념물 잇따라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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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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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톈안문 민주화 시위’로 숨진 이들을 추모하는 동상 ‘치욕의 기둥’이 23일 홍콩대에서 기습 철거되고 있다. 홍콩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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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대를 시작으로 홍콩 대학들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기념하는 예술 작품을 철거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배후에는 민주화 운동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중국과 홍콩 당국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홍콩중문대는 24일 성명을 통해 이날 새벽 교정에 있던 ‘민주주의 여신상’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홍콩중문대는 “학교는 2010년 해당 조각상의 교내 설치 요청을 반대했고 조각상의 설치를 인정한 적이 없다”면서 “내부 평가를 거쳐 해당 조각상의 철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학교 측은 “누구도 조각상의 유지와 관리에 대한 책임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며 과거 조각상을 교내에 설치한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와 홍콩중문대 학생회가 모두 해산했다고 덧붙였다.

홍콩중문대에 세워졌던 ‘민주주의 여신상’은 1989년 중국 톈안먼 시위를 상징하는 6.4m 높이의 조각상이다. 시위 당시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 등장한 동명의 조각상을 본 따 중국 정부의 폭력을 비판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톈안먼 광장의 본래 조각상은 인민해방군이 시위를 유혈 진압할 때 파괴됐다.

홍콩중문대 전 총학생회장인 황보한은 홍콩 입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교가 철거를 결정하기까지 정상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학교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너무 커서 학교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홍콩대 1학년 학생은 “정부가 이 순간을 역사에서 지우려는 것이 분명하다”며 “우리는 잊지 않겠지만 아마도 다음 세대는 (역사를) 알지 못할 것”이라고 홍콩프리프레스(HKFP)에 말했다.

홍콩 링난대도 톈안먼 민주화시위를 추모하는 대형 부조 벽화를 철거했다. 이 양각 부조 작품에는 민주주의 여신상과 함께 톈안먼 광장에서 홀로 탱크를 막아섰던 이른바 ‘탱크 맨’과 중국군의 총탄에 희생된 이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링난대는 이날 “최근 평가를 거쳐 대학 사회의 전반적인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철거했다”고 밝혔다. 에릭 퉁 링난대 학생회장은 “학교 측은 학생 대표들에게 기념물 철거와 관련해 어떠한 안내도 하지 않았다”며 학교 측에 철거 사유에 대한 해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철거된 두 작품을 모두 만든 천웨이밍은 “중국 공산당이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이후 그들은 언론과 집회, 표현의 자유를 뿌리째 뽑아버렸다”며 “그들은 잔혹한 탄압의 실제 역사를 없애려 한다. 홍콩에서 어떠한 이견도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그는 “작품에 가한 그 어떠한 손상에 대해서도 대학 측을 고소할 것”이라며 법적 조치를 시사했다.

앞서 홍콩대는 지난 22일 밤 톈안먼 민주화시위 기념 조각상인 ‘치욕의 기둥’을 기습 철거했다. 치욕의 기둥은 덴마크 조각가 옌스 갈시외트의 1996년 작품으로 톈안먼 시위 희생자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형상화한 8m 높이의 콘크리트 조각상이다. 조각상 하단부에는 ‘톈안먼 학살’, ‘노인이 젊은이를 영원히 죽일 순 없다’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홍콩대는 성명을 통해 “조각상을 교내에 유지하면 법적 위험이 있다는 외부 법률 자문 결과에 따른 결정”이라며 “대학은 동상을 캠퍼스에 전시하는 것을 승인한 적이 없으며 조각상 상태가 불안정해 안전 문제도 있었다”고 밝혔다.

갈시외트는 철거 당일 “그들이 조각상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다”며 “홍콩이 사람·예술·사유재산 보호 등 법과 규제가 없는 잔인한 곳이 됐음을 보여주는 불명예이자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10월부터 홍콩대와 합의를 모색하며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해왔다.

홍콩 시민사회는 홍콩의 중국 반환(7월1일) 직전인 1997년 6월4일 톈안먼 시위 추모 촛불 집회에 맞춰 이 작품을 홍콩으로 들여온 뒤 홍콩대 교정으로 옮겨 설치했다. 이후 촛불집회 주최 측인 지련회는 매년 5월 ‘치욕의 기둥’ 세정식을 열었다. 지련회는 홍콩 공안당국의 전방위적 압박을 받다가 지난 9월 말 자진 해산했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달 발표한 역사적 결의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적대적인 글로벌 반공 세력’이 일으킨 ‘정치적 폭풍’으로 묘사하면서 이례적으로 사건을 공개석상에서 언급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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