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가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러시아 국경 지대인 수미에서 특수 차량이 참호를 파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수미|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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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위협에 맞서 대규모의 대응군을 배치했다. 사실상 처음으로 나토가 구체적인 군사 조치를 취하면서 러시아와 서방 간 긴장감이 극대화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러시아는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압박을 높이는 한편, 내년 초 미국·서방과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해 대화를 재개하겠다면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략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노드스트림2 등 러시아와 경제 관계를 강화해온 독일이 러시아 압박을 본격화해야 한다는 ‘독일 역할론’도 나오고 있다.
독일 디벨트는 전날 나토 고위 외교관 발언을 인용해 나토가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에 대비해 4만명 규모 신속대응군(NRF)의 작전 준비태세를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나토는 NRF 내 ‘초신속합동군’(VJTF)이 위기 지역에 대한 배치 준비를 기존 7일이 아닌 5일 이내 갖추도록 했다. VJTF는 약 6400명으로 구성된 다국적군으로 현재 터키가 지휘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나토가 러시아의 움직임에 맞서 처음으로 취한 구체적인 군사조치인 만큼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방이 전면전 대비에 나섰지만 러시아의 도발을 막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22일 로마에서 열린 연말 기자회견에서 유럽연합(EU)이 전면전에 나설 상황이 아닌 데다 러시아산 가스 공급 문제로 사실상 러시아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이 국제결제망에서 러시아를 차단하는 등의 초강력 제재 방안을 언급했지만, 드라기 총리는 겨울을 앞두고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 공급에 의지하는 만큼 “지금은 (제재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벨라루스, 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향하는 ‘야말-유럽 가스관’의 가스 공급을 지난 21일부터 중단한 상태다. 가스 공급량의 1/3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천정부지로 가스 가격이 솟구치고 있다.
유럽에 가스 공급 ‘채찍’ 카드를 내민 러시아는 한편에서는 미국·서방과의 대화라는 ‘당근’ 카드를 꺼내들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2일 러시아 공영 텔레비전과의 회견에서 내년 초에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대화에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등이 안건으로 포함된다.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지만 서방의 공세가 계속될 경우 군사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했다. 협상이 실패하면 강경 대응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사실상 러시아의 전략에 미국과 서방이 휘둘리는 상황에서 EU 경제의 축이자 나토 가입국인 ‘독일 역할론’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서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 행동을 취할 경우 “엄청난 결과와 심각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나토와 EU 내에서도 러시아 제재를 두고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 러시아 제재 방안이 사실상 애매모호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독일이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가스관 노드스트림2 사업 승인을 앞두고 있어 러시아 제재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과 EU 국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독일이 노드스트림2 가스관을 폐쇄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부르킹스연구소의 프리츠 스턴은 “독일은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국가의 정책수단으로 폐지한다는 헌법을 제정한 뒤 동맹을 둘러싼 위협에 늘 한 발 물러서 있었다”면서 “하지만 현재 러시아의 도발에 실효성 있는 제재를 할 수 있는 건 EU 경제대국 독일 뿐”이라며 독일이 러시아에 맞설 서방의 중심축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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