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청년 표심
여야 대선 후보들은 20·30 세대를 만나는 일정을 대폭 늘렸다. 지난 11월 경북대학교에서 학생들과 사진을 찍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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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치권을 뒤흔든 세대 주역은 20·30세대였다. 이들을 두고 흔히 통용되던 ‘불만은 많지만, 정작 투표장엔 안 나온다’라거나 ‘정치 무관심 세대’ 같은 평가는 옛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값 폭등과 코로나19로 인한 취업난 등으로 막다른 길에 내몰린 20·30세대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점차 정치적 목소리를 키우더니 투표로 영향력을 증명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로 대변되는 청년 인사들도 정치권 중심부에 등장했다.
20·30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은 올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입증됐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몰표에 가까운 젊은 층의 지지가 쏠렸다. 방송 3사 출구 조사 결과 오 후보는 20대 55.3%, 30대 56.5%의 지지율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20대 34.1%, 30대 38.7%)를 크게 눌렀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청년의 보수화”라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로 보수 야당은 올 중순까지 청년 이슈를 선점했다.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36세(85년생)인 이준석 대표가 선출되자 정치권은 크게 술렁였다. 30대가 중앙 정계의 전면에 나선 건 196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38세의 나이에 야당인 민중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를 지낸 이래 56년 만이었다. 이 대표가 ‘보수의 얼굴’이 된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잇따른 선거 패배를 경험한 보수 유권자들이 전략적 투표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대표 당선 뒤 국민의힘에서는 당내 토론 배틀을 통해 임승호(27)·양준우(26) 씨가 20대 대변인으로 파격 발탁됐다. 지난달 초까지 진행됐던 대선 경선에선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의 홍준표 팬덤(fandom) 현상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더불어민주당도 청년 잡기에 나섰다. 지난 6월 송영길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청년 특임장관제 신설을 제안하는 등 ‘청년’이라는 단어를 21차례나 썼다. 1982년생으로 대전공고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로 20대를 보낸 이동학 청년 최고위원을 영입했고, 같은 달 청와대는 96년생 대학생인 박성민 전 최고위원을 청년비서관으로 깜짝 발탁했다. 하지만 이를 놓고 20·30세대 사이에서 “별다른 경쟁 없이 청년이란 이유로 1급 공무원인 청와대 비서관에 임명하는 건 불공정하다”는 역풍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여야 대선 후보들도 청년 구애에 적극적이다. 지난 1일 과학 분야의 청년 인재 4명을 영입한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16일에도 ‘국민추천 인재’라는 이름으로 고교생 정예람(19)군 등 5명을 영입했다. 지난 3일에는 청년들과 맥줏집에서 ‘쓴소리 간담회’를 열었고, 반(反) 여당 정서가 강한 인터넷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에펨코리아에 올라온 청년들의 글을 공유하거나 직접 인증 글을 올리기도 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은 20·30 세대를 만나는 일정을 대폭 늘렸다. 청년위원회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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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사할린 강제이주 동포의 손녀이자 30대 워킹맘인 스트류커바 디나씨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윤석열 정부는 모든 부처에 ‘청년보좌역’을 배치해 청년을 선거용 장식품으로 취급하지 않겠다”고 했고, 19일에는 페이스북에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상을 밝히며 “아마도 30대 장관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썼다.
청년 구애 경쟁이 과열 양상을 띠면서 잡음도 일었다. 30대 우주 전문가라는 타이틀로 영입된 조동연 전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은 사생활 논란이 불거져 사퇴했고, 노재승(비니좌) 전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도 과거 5·18 발언 등이 논란이 돼 사퇴했다.
20·30세대 표심은 내년 3월 대선의 승부를 좌우할 캐스팅보트로도 꼽힌다. 젊은 층의 ‘반문(反文)’ 정서가 강하게 표출됐던 지난 4월 보궐선거와 달리, 양강 후보를 향한 이들의 최근 여론이 엎치락뒤치락하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의 20대 지지율은 20%, 윤석열 후보는 19%로 박빙이었다. 30대에서는 이 후보 35%, 윤 후보 21%로 이 후보가 앞섰다. 앞서 9일 전국지표조사(NBS)의 경우 20대에선 윤 후보(28%)가 이 후보(20%)를 앞섰지만, 30대에선 이 후보 45%, 윤 후보 23%로 조사됐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최근 이 후보 아들의 도박 논란, 윤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허위경력 논란 등 유력 대선 주자의 가족 문제가 불거지자, 일각에선 젊은 층의 정치 혐오 정서가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7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선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의견 유보층’ 비율은 20대 34%, 30대 27%로 40대(10%)·50대(7%)·60대 이상(10%)보다 유독 높았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현재 청년들은 여야 주자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상태”라며 “20·30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공약이나 어젠다를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대선 직전 표심이 급격히 기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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