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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시각] ‘연금 부자’ 시대, 아직 갈 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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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국가 중 하나다.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퇴직연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체 퇴직연금 잔액은 255조5000억원에 달한다. 2016년부터 5년 동안 잔액이 배 가까이 불어났지만 이 기간 수익률은 1.8%에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체 퇴직연금 잔액 가운데 원리금보장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89.3%인 228조1000억원으로 조사됐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머서가 발표한 ‘글로벌 연금지수 평가’에서도 한국은 평가 대상국 43개국 중 38위를 차지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퇴직연금이 ‘노후 안전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대조적으로 미국의 상황은 어떨까.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자산운용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100만달러(약 11억7700만원) 이상의 연금 계좌를 보유한 가입자 수는 26만2000명에 달한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젊은 세대는 퇴직연금 계좌의 주식과 펀드 등 다양한 금융자산 투자를 통한 100만달러 노후 자산 형성, 일명 ‘401K(미국 퇴직연금 계좌) 백만장자’를 목표로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그 과정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올리는 것이 유행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의 퇴직연금시장 성장 배경에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이 1순위로 꼽힌다. 미국은 지난 2006년 연금보호법(PPA)을 제정해 디폴트옵션을 활성화했다. 특히 사업자에게 디폴트옵션 투자 손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면제해줬다. 이를 통해 퇴직연금을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관련 시장이 활성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디폴트옵션을 도입했지만 미국과는 상황이 정반대로 흘렀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디폴트옵션에 포함한 것이 화근이라는 평가다. 사업자들이 가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오히려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더 강조했다. 디폴트옵션 투자자의 약 75%가 원리금보장형으로 운용하게 됐고, 수익률이 사실상 답보 상태에 머무르면서 제도 도입 취지가 훼손된 사례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도 여야의 극적인 합의로 이르면 내년부터 퇴직연금시장에서 디폴트옵션 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일 전체회의에서 디폴트옵션 도입을 골자로 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일단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개인에게 장기적인 자산 운용을 요구하는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의 단점을 이 제도가 보완하고 수익률 제고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다만 디폴트옵션 가운데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금융투자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국내 퇴직연금 가운데 위험자산 비중은 10% 미만이지만 미국 영국, 호주는 50% 이상”이라며 “이제는 원금을 지키기 위해 과도하게 예·적금에 매몰될 필요가 없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고려할 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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