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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71세 미켈란젤로는 어떻게 노화와 고독을 극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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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로 타계 전 마지막 20년 그려

조선일보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윌리엄 E. 월리스 지음|이종인 옮김|책과함께|492쪽|2만5000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는 89세까지 살았다. 그는 20대에 ‘피에타’와 ‘다비드’를, 50대에 메디치 예배당 조각을 제작하고 60대에 시스티나 예배당 제단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려 명성을 떨쳤다.

1546년 미켈란젤로는 일흔한 살이었다. 이 예술가는 난생 처음으로 할 일이 없게 되었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교황 파울루스 3세에겐 계획이 있었다. 1505년 착공해 40년간 건축 중이던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 책임자 안토니오 다 상갈로가 그해 세상을 떴다. 교황의 다음 카드는 미켈란젤로였다. 고령의 미켈란젤로는 대성당의 완공은 물론이고 공사가 유의미하게 진척되는 모습조차 보지 못한 채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교황은 확고했다. 미켈란젤로는 이듬해 1월 1일 성 베드로 대성당의 최고 전결권을 쥔 건축가로 부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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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대학 미술사 석좌교수로 미켈란젤로 권위자인 저자는 지금까지 조명받지 못했던 미켈란젤로 ‘최후의 20년’에 주목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도나토 브라만테가 1505년 착공해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17세기 중반 완공할 때까지 150여 년이 걸렸다. 건물의 오랜 역사에서 미켈란젤로가 차지하는 시간적 비율은 12% 남짓이다. 나머지 88%를 직접 통제하지 않았는데도 미켈란젤로는 ‘성 베드로 대성당 설계자’로 역사에 남았다. 저자는 그 이유를 ‘만년(晩年)의 고독’에서 찾는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예술가가 맡은 최후의 임무였고, 노령, 절망, 죽음에 굴복하지 말아야 할 최선의 이유를 제공했다.” 장수(長壽)한다는 것은 많은 이를 먼저 떠나보낸다는 것과 동의어다. 1546~1547년, 오랜 친구 루이지 델 리초와 동생 조반시모네를 비롯해 미켈란젤로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 여섯 명이 세상을 떴다. 상실감에 빠진 그는 시에 썼다. “노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노년이 되었을 때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 노년을 참을 수 있기를. 노년이란 미리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니.” 대성당 건축이 그에게 활기를 다시 부여했다. 그는 전임자 상갈로의 계획을 뒤집고 브라만테의 원안으로 돌아갔다. 브라만테 생전엔 라이벌이었던 그를 싫어했지만 사방으로 빛이 들어오게 한다는 설계안을 존중했다. 많은 세부 도면을 손수 제작했다. 건설 현장에 표준 치수를 도입했다. 커다란 종을 매 시간 울리게 해 일꾼들이 작업 시간을 명확히 알도록 했다.

1559년 미켈란젤로는 84세였다. 파울루스 3세를 비롯해 교황 다섯 명을 거쳤다. 그는 여전히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가였다. 그는 대성당의 상징인 돔을 설계했다. 돔을 어떻게 76m 높이의 공중으로 들어 올려 건설할 것인가는 대성당의 오래된 숙제였다. 미켈란젤로는 먼저 구조에 시선을 돌리고 그 후에 구조물을 아름다운 건물로 변모시켰다. 대성당은 중세풍 종탑이 가득했던 로마를 ‘돔의 도시’로 바꾸어놓았다.

미켈란젤로는 1564년 2월 18일, 89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세상을 떴다. 대성당은 미완으로 남았지만 그는 자신의 설계를 수정할 수 없는 단계까지 건물을 세워 올리는데 성공했다. 저자는 말한다. “그의 권위는 평생 얼마나 많은 벽돌과 석회암을 쌓았는가가 아니라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의 선명함과 감동적 특성에 따른 것이다.” 저자는 미켈란젤로의 만년을 다루려면 최소한 예순을 넘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오래 기다렸다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72세 때 쓴 시에서 “이제 나의 백발과 나의 고령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미 내 손안에는 저승행 티켓이 들려 있다”고 했다. 그 후 17년을 더 살았다.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 말년을 보내는 것이 꿈이었지만, 그에겐 대성당 건축이 더 중요했다. 조카에게 보낸 편지에 “하느님께서 나를 여기에 두신 것”이라며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실패하지 않을 것이고 나 자신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곧 한 해가 저물고,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한 살씩 늙을 것이다. 늙음을 연료로 ‘최후의 미션’에 도전한 이 예술가의 이야기가 나이 먹는 것이 서글픈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원제 Michelangelo, God’s Architect.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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