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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숨겨진 욕망이 드러나는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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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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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가 마감됐다. 열댓 명의 미술계 인사들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1월 임기 종료를 앞둔 윤범모 관장도 원서를 냈다. 한때 관장 공모 형식은 폐기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그다. 미술계의 패거리 의식과 인맥 제일주의를 고질적 병폐로 꼽기도 했던 윤 관장은 정작 2019년 선임될 당시 ‘불공정’ ‘코드 인사’ 논란의 당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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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얼마 전 서울경제 조상인 기자는 칼럼에서 현안을 두루 파악하고 있는 현직 기관장과 외부 민간인의 경쟁은 불공정하다고 비판했다. ‘내정자’를 염두에 둔 형식뿐인 공모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내비쳤다. 특히 윤 관장을 빗댄 듯 “존경받던 원로의 뒷모습을 얼룩지게 만든 것은 개운치 않은 제도와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조 기자의 글처럼 채용 조건을 느닷없이 바꿔 현직 또한 공모 절차를 밟도록 한 건 불공정하다. 기존엔 3년 임기 동안의 사업성과가 우수하다고 인정될 경우 2년을 연장해 최장 5년까지 재직할 수 있었다. 일종의 리셋(reset)이기에 언뜻 공평하게 비치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시한 직위 당면 과제를 보면 그렇지 않다. 착시다. 실제론 현직이 훨씬 유리하다.

일례로 ‘이건희 컬렉션’을 비롯한 기증 작품 보존과 활용계획 수립 및 전시 개최, 누리집 구축 등의 과제는 윤 관장 체제에서 진행 중이거나 완료된 것들이다. 말이 과제이지 이건 그냥 그동안 맡았던 것을 계속 진행하라는 주문과 진배없다. 이러니 ‘내정자를 염두에 둔 형식뿐인 공모제’라는 의구심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하나 “존경받던 원로의 뒷모습을 얼룩지게 만든 것”이란 대목에선 나와 약간의 견해차가 있다. 얼룩의 실체는 제도와 시스템이 아니다. 욕망이다. 그러나 욕망이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으로, 특정인의 소유라 하기 어렵다. 다만 끝내 감춰져 있어야 할 욕망이 그 제도와 시스템으로 인해 노출되었을 뿐이다.

한 측면만 보자면 정부 산하기관 등의 주요 기관장 공모는 숨겨진 욕망이 드러나는 무대이다. 문제는 동시대 미술의 국제적 흐름을 이해하고 공히 역량을 인정받는 이가 아닌, 미술계보단 자신의 안위부터 챙기는 자들이 앉으면 공동체에 틈을 내며 혼란과 불신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권세가 목적인 양 여겨지는 사람, 이렇다 할 실력 대신 정치와 줄서기가 특기인 예술인, 사인한 서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자리를 옮기는 메뚜기 미술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어떤 공간에 몸을 눕히든 결코 인정받지 못한다. 심지어 홍보창구를 제외하곤 조직 내에서도 신망을 얻기 힘들다. 금세 얕은 밑천이 드러나는 데다, 자리 자체에 계급과 질서를 부여하며 자신들보다 비열등한 다수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권력 확보의 기회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혹은 앞으로도 누군가는 욕망의 무대에서 뽑아만 주면 백골이 진토가 될 때까지 유무형의 발전을 위해 분골쇄신할 듯한 말을 또다시 내뱉을 것이다.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곳에 서기 위해 휘발성 강한 헛소리로 시간을 채울 것이다. 언젠가 가장 크게 저항을 받는다는 것은 모른 채.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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