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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특파원 리포트] TF로 해결 못 할 ‘외교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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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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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요소수 대란이 가시화된 지난달 1일, 외교부는 부랴부랴 양자경제외교국 산하에 ‘경제안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좀처럼 사태가 수습되지 않자 지난달 19일 이 TF를 차관보급으로 ‘격상·확대’했다는 것을 무슨 대책인 양 발표했다. 지난달 26일엔 기획재정부가 주도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산업부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 ‘경제안보 핵심품목 TF’도 출범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분주한 정부를 보며 2년 전 이맘때쯤 함께 점심을 들었던 중견 여성 외교관이 떠올랐다. 당시 그는 “외교부가 정책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다”며 걱정했다. “외교부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잘 읽고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을 예상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청와대나 국내 다른 부처에 ‘경고’도 해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청와대가 외교부 말을 듣지도 않고, 장관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윗사람들이 묻지 않으니 아래에서도 챙기지 않는다. 이러다 무슨 일이 터질까 두렵다”고 했다. 그 걱정이 2년여 만에 현실이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요소수 품귀 현상은 예상하기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코로나 초기인 작년 3월 이미 백악관은 “미국 항생제의 97%가 중국에서 온다”며 의약품 공급망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다른 분야에 대한 점검도 이어졌다. 작년 7월 미 국방부는 “외국의 단일 공급자에 의존하는 핵심 품목을 많이 확인했다”고 했다. 미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안보·기간시설안보국은 작년 11월 “단일 공급자에서 벗어나 공급망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것이 “코로나의 교훈”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인 지난 2월 국가안보회의, 국가경제위와 상무부, 국방부, 에너지부 등이 협력해 각 산업 분야의 공급망 취약성을 확인하라는 ‘미국 공급망 행정명령’을 내렸다.

‘핵심 품목 공급을 한 나라, 특히 중국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코로나 이후 국제사회가 다 알게 된 사실이었다. 우리 외교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미국이 저 법석을 떠는 동안 남 일처럼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동향을 읽고 공급망 선제 점검을 건의했어야 할 주미 대사관의 수장은 “이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국가” 같은 발언이나 하고 있었다. 미국을 찾는 다른 고위 당국자들도 대개 ‘종전 선언’ 타령이 먼저였다.

‘윗사람들’이 국제사회 흐름에 무관심한데 ‘아래’에서 경고음을 낼 수 있을 리 없다. ‘북·중’만 보고 있는데 세계가 보일 리도 없다. 그렇게 망가진 외교는 ‘무슨 무슨 TF’로도 고칠 수 없다. 또 무슨 위기가 올까 조마조마할 뿐이다.

[김진명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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