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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대선 전투 돌입한 北 “李는 호걸… 尹 당선 땐 관계 파탄” [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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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왼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021년 11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2021 중앙포럼'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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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동(靜中動)의 시간은 끝났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확정되면서 평양 대남 당국도 분주해졌다. 남한 대선이 100일도 채 남지 않자 평양 통전부도 서울 여의도처럼 움직인다. 대남 선거 개입도 다른 과업과 같이 ‘전투’ 형태로 총력 진행된다. 그동안 취합했던 후보들의 장단점이 정리된 인사 카드를 토대로 공격과 방어 포인트를 끄집어낸다. 5년간 청와대의 주인을 결정하는 남한 대선은 평양 주석궁의 최대 관심사다. 갑을(甲乙) 상태로 고착된 남북 관계를 뒤집을 후보의 당선은 통전부로서는 악몽이다. 야당 후보가 당선되면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리는 대북전단방지법 폐지 등 반공화국 모략(?)을 전개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통전부는 남한 대선 TF팀을 구성하여 매일 김정은에게 직보한다. 대북 정보망과 대남 채널을 통한 현장 정보에 따르면, 지금 북한 대남 당국은 이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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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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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이회창⋅노무현 후보가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금강산 관광이 진행 중이었다. 금강산에 나타난 통전부 요원들은 안내원을 가장해 관광객들에게 접근, 남한의 대선에 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여야 후보별 여론을 파악하고 약점을 잡아내려고 했다. 북한은 이회창 후보에 대한 부정적 여론 확산 전략을 구사했다. 2007년 대선 시기에는 남한 정보 당국이 봄부터 물밑 접촉에 나서 8월 정상회담에 합의했고 10·4 정상회담 선언문으로 이어졌다.

통전부의 선거 개입 대남 전투는 통상 물밑과 물 위 두 갈래로 진행된다. 우선 공개 전략은 선전전이다. 과거 황장엽 비서에 따르면, 통전부 대남 정세분석팀은 남측 신문의 열렬한 구독자다. 최근 북한의 대남 심리전 소재는 집값부터 대장동 이슈까지 남한 실상을 꿰뚫고 있다.

지난달 메아리라는 외곽 선전 매체는 대선 주자들을 술에 비유하며 ‘결국 세 가지 술이 다 마실 만한 술이 못 되는 것 같다’고 조롱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남한 주민의 글이라며 남한 정치 체제 전체를 매도하려는 심리전이다. 이례적으로 여권 이재명 후보를 ‘푹 썩은 술’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자신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뜻이다. 야권 후보에 대한 비난은 직설적이다. 다른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윤석열 후보가 지난달 12일 외신 기자 간담회 당시 “원칙 있는 자세로 일관성을 견지해 주종 관계로 전락한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발언한 것을 꼬집어 ‘윤석열이 집권하면 남북 관계는 파탄되고 한미 관계는 굴종밖에 남을 것이 없다’고 위협했다. 공격의 효과가 여의치 않다는 판단이면 김여정 부부장이 긴급 출현하여 ‘통 큰 메시지(?)’를 던질 것이다.

비공개 물밑 전략은 남한 내 자생 토착 친북 세력들과 연계하는 지하 공작 활동이다. 지난 9월 구속 기소된 충북동지회 간첩 사건은 평양 통전부 산하 문화교류국을 ‘본사’라고 지칭하며 여권 후보 지원 활동을 전개했다. 남한 내 활동가들은 북한 선전 매체에서 주장하는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댓글 활동을 자행한다. 인터넷에서 유포되는 여당 후보에 대한 호평도 주요 전파 메시지 중 하나다. 이재명 후보에 대해 “할 땐 하고 사업 전개력과 주동력이 강한 사나이라는 평가가 많다. 바람쟁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보위 일꾼들은 큰일을 하는 사람이 주색이 없으면 호걸인가라면서 그런 사람이 큰일하고 우리와 말도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데일리 NK 취재)라는 묘한 평가를 전파한다. 러시아 KGB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해 트럼프에게 유리한 여론을 물밑에서 형성했던 공작 방식도 벤치마킹하고 있다. 스티븐 비건 전 미 국무부 부장관은 최근 “남북 통신선 복원이 남한 대선 개입 의도”라고 지적했다.

비공개 대남 선거 전투의 핵심은 남북 정보 당국 간 은밀한 거래다. 외부의 시선을 피해 판문점과 제3국에서 회동하는 공작이 이뤄진다. 남측은 종전 선언이라는 미끼를 내세워 북측을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유인할 것인지에 총력전이다. 북측이 요망하는 당근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내년 2월 4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남북한의 정상이 참여하는 이벤트는 마지노선이다. 최소한 연초에는 화상 정상회담으로 분위기를 고조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아 전격 타결을 위해 무리수도 감내한다. 청와대는 주석궁에 ‘깐부’라는 인식을 고취하는 데 몰두한다. 대선 패배는 여당이나 평양 모두에 치명적인 결과인 만큼 공동 이벤트 참여는 명약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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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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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측도 고심이 깊다. 최고 존엄이 임기 말 지지율이 30%대에 그친 남측 대통령과 화상이든 대면이든 정상회담을 할 경우 득실 여부가 불확실하다. 확실한 금전 보상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물밑 담판이 간단치 않다. 특히 여권 후보가 낙선할 경우 2007년 이명박·정동영 대선 이후 경험했던 후유증도 부담이다.

박빙 선거 판세에서 북한 변수는 최소 3% 내외의 영향력을 미친다. ‘누가 북한 변수에 마음이 움직여 투표하는가’라고 묻는 선거 전문가는 한반도의 민족주의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반미 구호로 무장된 민족 공조의 키워드가 답답한 한반도 국제 정세의 판을 흔들 요술 방망이로 둔갑하는 순간, 평정심을 잃는 중도층이 적지 않다. 청와대와 여당은 틈새 3%를 공략할 전략 마련에 집중한다. 갑자기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것도 아니고 없던 일자리가 하늘에서 쏟아질 수도 없다. 후보가 큰절을 한다고 지지율이 오르지도 않는다. 후보들의 선거 보직 위원장들은 역대 선거판을 누볐던 ‘그렇고 그런’ 인물들이다. 복지 정책은 ‘무상 시리즈’의 포장지 색깔 싸움이다. 중도 입장에서 식상한 선거다. 통전부와 국정원이 합의하는 비대면과 대면 정상회담 이벤트는 내년 3월 선거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대선이 코앞인데 국정원의 대북 담당 차장에 예산을 담당하던 실세 기조실장이 임명되었다. 남북 관계 돌파구를 마련하는 인사라는 평이다. 무엇을 어떻게 돌파하라는 의미일까.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이 12월 초입 베이징을 방문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는 왜 베이징으로 가는 것일까.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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