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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의 마지막 단식수행…대현스님 유고집 '아름답게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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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 찾아오자 투병 대신 단식 택해…'29일째' 피안의 세계로

부처 가르침·단식일기·고별사 묶어 출간…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편안하다"

연합뉴스

고(故) 대현스님
[올리브나무 제공. 재배포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고승은 투병 대신 단식을 택했다. 병원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 생을 마감하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 비우고 또 비우는 길로 마지막 수행에 들었다. 출가 이후 쉰 번의 안거(安居) 등으로 수행에 매진했던 그는 마지막 모습까지 한결같았다. 그렇게 단식을 이어가던 스님은 몸무게가 30㎏대를 맴돌다 20㎏ 후반대까지 떨어졌다. 155㎝ 안팎의 단신임을 고려해도 깃털처럼 가벼워진 것이다.

내려놓고, 비워내기를 반복하며 29일째가 되던 지난 9월 22일 스님은 고요한 숨소리와 함께 열반에 들었다. 세수 75세였다.

단식 수행으로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고(故) 대현스님의 이야기다.

지리산 정각사 죽림선원에 주석했던 스님은 지난해 만성폐렴 진단을 받고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병원 대신 지금의 수행처인 죽림선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치료를 위한 어떤 약도 쓰지 않겠다는 것.

대신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갔던 길을 공부하고, 그 내용을 요약해 자신의 생애 마지막 수행경험과 함께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남기길 원했다고 한다.

그의 바람은 단식 기간 힘이 닿는 데까지 썼던 일기와 임종게가 담긴 고별사,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인 '대반열반경'의 가르침과 한데 묶여 유고집이 됐다. 책은 생전 바랐던 제목 그대로 '아름답게 가는 길'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스님이 직접 쓴 고별사에는 그가 죽음을 어떻게 여기고 준비했는지 드러난다.

"이 세상에 올 때는 업연에 끌리어 오는 줄 모르고 왔지만 갈 때는 알아차림으로 한 생각 챙기면서 가는 줄 알고 가고 싶습니다. 올 때는 비록 울면서 왔지만 갈 때는 웃으며 가고자 합니다. 나를 억지로 병원으로 데려가 영양제를 놓고 음식을 먹이지 마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대중들께 짐 지워 드려 죄송합니다."(본문 318쪽)

죽음의 순간을 온전히 맞길 바라면서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 이들이 있다. 그렇더라도 병마와의 싸움보다 더 혹독할지 모를 단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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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청년 시절 단식을 하며 수행에 든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진을 했더니 정신이 맑아지고 화두가 밤낮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때의 기억이 세상을 떠날 때의 방편이 된 것이다.

"백 년 이백 년 더 살다 간다고 해도 아쉽기는 매 한 가지입니다. 지금 더 살려고 버둥댄다면 그것은 생에 대한 애착 때문입니다. 생에 대한 애착은 윤회의 씨앗이 됩니다. 나는 그 윤회의 씨앗인 애착을 버리고자 합니다. 좀 힘이 남아 있고, 정신이 또렷할 때 단식을 하면서 마지막 정진을 하고자 합니다."(본문 317쪽)

50안거 성만(成滿)이라 하면 25년간 여름철, 겨울철 6개월씩을 빼놓지 않고 선방에서 화두 일념에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수행이 깊었고,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도 많았겠으나, 스님이 생의 마지막까지 보인 모습은 겸손이었다.

시은(施恩)만 지고 있어 무거운 업만 쌓여 간다거나, 사제들이 사형으로 대접해줬으나 무엇하나 베푼 바가 없다며 반백 년 지나온 시간을 돌아봤다.

특히 훌륭한 수행력이나 덕망이 없었음에도 과분한 대우를 해주었다며 마음이 무겁다는 말로 신도들에게 감사 인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유고집을 낸 올리브나무의 유영일 대표는 스님의 마지막 단식 수행을 두고 '고요한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출판일을 하면서 스님과 인연을 맺은 유 대표는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스님께서는 10일 정도 단식을 하면 돌아가실 것으로 생각했는지, 조금은 당황한 듯했다"면서 "'생명체라는 것이 신계(신의 세계)에서도 여닫을 수 없으며, 본인의 생명일지라도 자기 마음대로 여닫을 수가 없구나'라고 말씀하셨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스님께서는 '나는 편안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320쪽. 1만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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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스님과 유영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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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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