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허큘리스시의 한 주유소 앞 게시판에 휘발유 1갤런(약 3.78ℓ)당 5달러가 넘는 가격이 표시돼 있다. [AFP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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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치솟는 국제유가를 잡기 위해 중국 외에 한국·일본·인도 등 주요 석유 소비국에도 비축유 방출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급격한 증산을 요구했다가 산유국들 반발에 부딪히자 이번엔 대규모 소비국들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정유 기업들이 유가 급등에 편승해 폭리를 취하고 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바이든 대통령과 고위급 참모들이 지난 몇 주간 중국은 물론 핵심 동맹국인 한국·일본·인도 등과도 비축유 방출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가 세계 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한 공동의 노력 차원에서 비축유 방출을 고려하도록 각국에 요청했다고 전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5일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국제유가 안정을 통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자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비축유 방출을 요구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비축유 방출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것이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조치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날 중국 국가식량물자비축국 대변인은 "(중국은) 비축유 방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 성명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국이 미국 요청을 받아들여 원유 저장탱크 밸브를 열지는 미지수다. 비축유는 각국이 유가 안정과는 별개로 경제·안보의 위급 상황 등을 대비해 쌓아놓은 물량이라 방출 여부를 쉽사리 결정할 수 없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일본은 일단 미국 측 요청에 긍정적 입장을 취했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아직 뚜렷한 반응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도 각국과의 구체적 협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전 세계 에너지 공급과 가격이 세계 경제 회복을 위태롭게 하지 않도록 다른 에너지 소비자들과 논의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언급했다.
한국은 공급 확대보다는 유류세 인하를 통해 휘발유 가격을 안정시키기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 정부가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을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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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의 이 같은 요구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심화되고 있는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휘발유는 자동차 이용이 많은 미국인에겐 가격 변동 체감도가 가장 높은 상품이다.
최근 미국 내 여론조사는 일관되게 물가 급등세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상원의원 3분의 1과 하원의원 전원을 새로 선출하는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 엄청난 악재일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는 물론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도 공급망 회의를 주도하는 등 애를 쓰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미국이 각국의 비축유 방출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2000만배럴이 넘는 비축유를 먼저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황이 다급한 바이든 대통령이 먼저 '마중물'을 부어야 각국도 비축유 방출에 호응할 명분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미국 에너지부 집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이 보유한 전략비축유(SPR)는 6억110만배럴에 이른다. 바이든 대통령이 비축유 방출을 결정하면 13일 후 원유가 미국 시장에 공급된다. SPR는 1970년대 세계 오일쇼크 이후 미국이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원유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생겼다.
백악관은 주요 정유 기업들을 향해서도 채찍을 꺼내 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유·가스 업체들의 폭리 여부를 조사해 달라'며 독과점·불공정 거래 감시 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촉구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리나 칸 FTC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석유와 가스 회사들의 늘어나는 반(反)소비자 행태 증거들을 살펴봐 달라"면서 "정제비용은 낮아지고 있지만 주유소 기름값은 여전히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FTC는 불법행위가 가정에 비용으로 작용하는지 살펴볼 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즉각 행동에 나서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한에서 "지난달 기준 비정제유 가격이 5% 하락하는 동안 휘발유 소비자가격은 3% 올랐다"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큰 차이"라고 비판했다. 또 미국 양대 석유·가스 기업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이던 2019년에 비해 두 배의 이익을 거둬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쏟아부었다고 꼬집었다. 업계에서는 엑손모빌, 셰브론 등이 우선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워싱턴 = 강계만 특파원 / 서울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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