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문학자 김학주 명예교수가 쓴 '조조의 재발견'
중국 제스산(碣石山)의 조조 시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삼국연의와 무대예술의 표현을 거치면서 조조는 간신의 한 전형으로 고정돼 버렸다. 얼굴을 새하얗게 화장한 아주 못된 놈으로. 그래서 세 살배기 아이까지도 모두 조조를 무척 미워한다."
중국 시인 겸 역사학자 궈모뤄(郭沫若·1892∼1978)는 한 논문에서 중국 삼국시대에 유비, 손권과 패권을 두고 다툰 조조(曹操·155∼220)의 후대 평가와 관련해 이같이 밝혔다.
조조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은 중국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존재한다. 그를 악인으로 보는 관점의 뿌리는 나관중이 14세기에 쓴 소설 '삼국지연의'라고 알려졌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유비와 대척점에 있는 조조는 왕실을 배반한 간사한 영웅으로 그려졌다.
중문학자인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는 신간 '조조의 재발견'에서 조조를 위대한 인물로 재평가한다. 군사와 정치 업적은 물론 문학 분야에서의 활약상, 인간성까지 조조에 관한 모든 것을 재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의 간악함을 드러내는 사건 중 하나는 여백사 일가족 몰살이다. 조조는 동탁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뒤 자신의 부친인 조숭과 의형제 사이인 여백사 집에 머물게 됐는데, 집 뒤에서 칼 가는 소리를 듣고는 가족을 무참히 죽인다.
하지만 조조의 전기를 보면 이 사건은 진실과 거리가 먼 허구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조조를 야비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극적 장치라는 것이다.
아울러 조조는 황건적, 동탁, 원술, 여포 등 한나라에 반기를 든 사람을 처단해 황제로부터 벼슬과 땅을 받았다는 점에서 성품이 곧은 인물이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특히 조조가 지닌 문학적 재능에 주목한다. 그는 진수가 편찬한 역사서 '삼국지'를 근거로 "조조는 학문과 문학을 좋아해 창을 들고 싸우는 중에도 책을 늘 곁에 뒀다"며 "산에 올라가서는 반드시 시를 읊고 악기로 반주하며 노래했다"고 강조한다.
이어 조조는 중국 문학사상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올바른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이고, 처음으로 문단을 조성해 중국 전통문학을 발전시킨 훌륭한 문인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시를 쓴 시인이 간사한 인간일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조조가 지은 '단가행'(短歌行)이라는 시에는 "그리운 임이여/ 내 마음의 시름 하염없네/ 오직 그대 때문에/ 지금도 나직이 읊조리고 있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첫 두 구절은 유교 경전인 '시경'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조조가 실제로는 다재다능하고 인품도 좋은 인물이었다고 거듭 주장하는 저자는 유비와 손권의 행적에는 비판할 여지가 많다고 강조한다.
그는 "유비는 전쟁을 잘하는 재주 있는 장군임은 틀림없지만, 지조가 없고 꿋꿋하지 못한 인물임이 분명하다"고 평가한다.
손권에 대해서도 "유비와 손을 잡고 친하게 지내다가도 다시 싸우는 짓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며 마찬가지로 곧은 임금은 아니었다고 본다.
연암서가. 471쪽. 2만5천 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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