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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회복지 정책과 규모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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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읽기] 우석진ㅣ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두차례 컷오프에서 살아남은 4명의 후보가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다. 도덕성 검증을 위한 네거티브가 점점 강해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토론 중간에 중요한 정책 이슈가 던져지며 토론이 되고는 있다.

지난 11일에 열린 본경선 첫 티브이 광주·전남·전북 합동토론회에서 윤석열 후보와 유승민 후보가 복지정책을 둘러싸고 거칠게 맞붙었다.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유 후보의 복지 관련 질문에 어쩌면 다음 정부에서 상당히 중요할 수도 있는 윤 후보의 답변이 있었다. 유 후보는 윤 후보에게 “복지 정책이 무엇이 있냐”고 물었다. 윤 후보는 “복지라는 게 굉장히 포괄적인데 크게 두가지”라며 “아주 어려운 사람에게는 두툼하게 해주고 복지를 ‘규모의 경제'나 ‘보편 복지'로 할 만한 것들을 사회 서비스로 해서 복지 자체에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 후보는 “복지를 ‘규모의 경제'라고 그러셨나”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윤 후보는 “예를 들어서 이런 것이다. 개별적으로 하는 것보다 전체 국민이 말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사회 서비스 일자리 측면이라고 해명했다.

윤 후보가 사회복지 서비스에서 규모의 경제를 언급한 것은 중요한 실천적 의미가 있다. 경제학에서 규모의 경제라는 것은 생산량이 증가할 때 생산에 소요되는 평균 비용이 감소하는 기술적 특성을 지칭한다. 대학생들이 학과 점퍼를 맞출 때 10개 주문하는 것보다는 100개 주문하는 것이 단가가 싸다. 고정비용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면,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시설은 점점 커지는 경향이 있다.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네트워크 산업의 경우 큰 기업이 작은 기업에 비해 경쟁에서 우위를 갖게 되어 큰 기업만이 생존하게 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궁극적으로는 자연독점이 발생한다.

사회복지 서비스에서도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규모의 경제는 존재할 수 있다. 표준화된 서비스일수록, 시설에서 제공 가능한 서비스일수록 규모의 경제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고정비용이 필요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시설이 필요하고, 서비스를 원활히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접 인력 외에도 행정 등의 보조 사무를 처리할 인력이 필요하다. 식사나 재화의 제공에 있어서도 대규모로 구매하여 제공하는 것이 싸게 먹힌다. 이렇게 되면 가정, 작은 시설, 혹은 지역 커뮤니티에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그 시설들을 통합해서 큰 시설로 만들어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최소한 비용 측면에서는 유리하게 된다.

문제는 정책 결정자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사회복지 서비스 공급 기관들끼리의 인위적 통폐합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설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시설은 대규모화된다. 작은 시설들에 대해서는 통폐합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사회복지 서비스는 표준화될 것이다.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효율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으니 비용 효율화 측면에서 그 조치는 가속화될 것이다.

대통령이 규모의 경제를 강조하는 순간 개별화된 서비스는 시설로 집중될 것이다. 하지만 사회복지 서비스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휴먼 서비스다. 각자가 필요한 욕구가 다르다. 어느 정도 범주화를 통해 표준화를 달성할 수는 있지만 모든 수혜자에게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예를 들어, 보육 서비스에 있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원 20명 이하인 가정형 어린이집을 통합하여 민간 어린이집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같은 서비스에 좀 더 적은 비용, 혹은 같은 비용에 좀 더 양질의 서비스는 공급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주지 근처에서 어린이집을 보내고 싶은 수요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최근 탈시설화되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보호 역시 시설화로 역주행할 가능성이 있다. 시설은 특별한 보호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 전문적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특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토론 중에 간단히 언급된 사회복지 서비스의 규모의 경제는 생각하기 어려운 파장을 가져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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