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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별세에 日 언론이 주목한 ‘통석의 염’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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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일왕, 盧 대통령한테 ‘통석의 염’ 언급

日 언론 “분명한 사과와 반성의 뜻 표시한 것”

국내에선 “진정한 사죄 아냐… 말장난” 불만도

세계일보

1990년 5월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왼쪽)이 환영 만찬에서 아키히토 당시 일왕과 건배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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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이후 외신들이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일본 언론들은 특히 고인의 대통령 재임 시절 한·일관계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1990년 한·일 정상회담 당시 과거 일제강점기를 사과하는 의미로 쓰였던 ‘통석(痛惜)의 염(念)’이란 표현이 일으킨 파동이 눈길을 끈다.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은 27일 “고인이 1990년 5월 일본을 방문해 궁중 만찬 때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으로부터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소개했다. 이는 일본어로 ‘매우 슬퍼하고 애석하게 여기는 생각’이란 뜻이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선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라고 한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키히토 전 일왕은 1990년 5월 24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방일을 환영하는 만찬에서 만찬사를 통해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일제강점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쇼와 천황(전임 히로히토 일왕)께서 ‘금세기 한 시기에 양국 간에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며,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상기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은 한국 측이 요구했던 가해·피해자의 명시와 함께 분명한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세계일보

2016년 11월 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가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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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최호중 외무장관은 훗날 회고록에 노 대통령 방일을 앞두고 일본 외무성과 가진 교섭에서 ‘통석의 염’을 두고 일왕이 그런 표현을 써가며 유감을 표한다면 한국 정부로선 이를 의미있는 사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적었다. 한·일 외교당국의 조율을 거쳐 나온 표현이 바로 ‘통석의 염’이란 의미다.

하지만 한국 언론과 국민들은 반발했다. ‘통석’이라는 단어는 정작 일본에서조차 잘 쓰이지 않는다는 점, 뜻 자체도 사죄보다는 애석이나 애통의 의미가 더 강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다수가 “말 같지도 않은 ‘통석의 염’을 사과인 양 받아들이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더 애석하고 애통하다”고 비판했다. 이후 한국 외교가에서 ‘통석의 염’은 두고두고 논란의 대상이 됐다.

다만 아키히토 전 일왕 자신은 친한적 성향을 뚜렷하게 드러내왔다. 그는 2001년 일본 왕실의 조상이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기록돼 있는 사실에 한국과의 연을 느낀다”라는 말로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는 “한반도에 지대한 고통을 주었다는 깊은 슬픔”이란 표현으로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를 사과했다.

아마키 나오토(74) 전 레바논 주재 일본대사는 최근 도쿄에서 한국 언론사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아키히토 전 일왕은 재임 30년간 과거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일본은 두 번 다시 전쟁하지 않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아키히토 전 일왕의 방한이 이제라도 성사된다면 과거사에 대해 사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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