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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노태우 1932~2021...장례는 국가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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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때 북방정책 성과

쿠데타 주역 ‘빛과 그림자’

여권 일각 국가장 반발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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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7일 오전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최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마음이 아프다. 오랫동안 고생하셨는데 아무쪼록 영면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밝혔다(위쪽). 영국 출장 중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씨가 27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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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별세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가 국가장으로 치러진다. 27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광주에 지역구를 둔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 예우 및 국립묘지 안장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12·12 쿠데타의 주역이자 민주화 후 첫 직선제 대통령으로 고인은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방외교정책 성과를 거뒀지만 군부독재라는 한국정치사의 비극적 과거는 여전히 미완의 평가이자 현재형 논란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관련기사 4·5면

27일 정부에 따르면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결정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직 대통령에게는 일반적으로 ‘국가장’이 적용된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17년 확정판결을 받으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박탈돼 ‘국가장’으로 치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가장,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장,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하야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대통령은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과거 국가가 장례 비용을 전부 부담하는 국장과 일부 부담하는 국민장으로 나눴지만 2014년 모두 국가장으로 통합됐다.

노 전 대통령은 대내외로 격동의 시대였던 1980년대,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고, 5·18광주민주화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6개월간 이어지던 ‘서울의 봄’을 끝낸 당사자가 됐다.

1985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임기말 1987년, 신군부 주도한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다. 후보로서 ‘6·10 민주화 항쟁의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6·29 선언을 발표한다. 결국 그는 마지막 군인 출신 대통령이자 직선제로 당선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에는 김영삼 중심의 통일민주당과 손잡으며 한국 정치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3당합당을 주도했다. 김대중 중심의 평화민주당을 소수정당으로 고립시킨 3당합당은 지역주의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1980년대 후반은 ‘냉전 종식의 시대’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념과 체제가 다른 이들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은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 공동의 번영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북방정책을 천명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은 결실을 거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취임 첫해 개최된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냉전으로 대결 구도에 있던 나라들이 모두 참여한 것이다. 노태우 정권 때 중국과 러시아 등 대부분 공산권 국가와의 외교관계가 시작됐다.

정치권과 재계 등 각계의 조문과 애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의 조오섭(광주 북구갑) 의원과 윤영덕(광주 동남갑) 의원은 이날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받은 중대 범죄자”라며 국가장에 반대했다.

박병국 기자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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