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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수업도, 업무도, 배달도 멈춤…‘비대면 사회’ 습격한 KT 인터넷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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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휴강 속출하고 재택근무에도 차질

“아현 화재 악몽 떠올랐다”는 자영업자도

KT, 디도스에서 설정오류로 원인 정정


한겨레

KT 인터넷망 장애로 25일 오전 전남 구례군 마산면 한 식당 입구에 ''전산망 오류로 인해 카드 결제 불가'' 안내문이 붙어 있다. 구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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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11시 20분, 집에서 비대면으로 중간고사 시험을 보던 서강대 재학생 이아무개(25)씨는 휴대전화가 먹통이 된 것을 발견했다. 비대면 시험 중 수강생들을 비추는 휴대전화는 교수가 수강생들을 감독하는 ‘폐회로텔레비젼(CCTV)’ 역할을 한다. 이씨는 자신만 문제가 생긴 줄 알고 휴대폰을 조작하느라 시험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시험 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수강생 중 3분의 1이 케이티(KT) 인터넷 서비스 장애로 같은 증상을 겪은 것을 알게 됐고, 결국 다음주 재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같은 시각, 서울 광화문에서 패스트푸드 가게를 운영하는 이아무개(31)씨도 가게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배달 주문을 받지 못했다. 김씨는 “매장도, 내가 쓰는 휴대폰도 모두 케이티 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주문을 하나도 못 받았다. 평소 점심시간 매출을 따져봤을 때 30만원 정도의 손해를 본 셈”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오전 11시 20분께부터 40분가량 전국 일대에서 케이티(KT) 인터넷망이 마비되며 가입자들과 케이티 망을 사용하는 기업, 학교, 상점 등에서 혼란이 벌어졌다. 코로나19로 다수의 기업과 학교가 메신저나 화상회의 서비스 등을 통해 비대면으로 소통하고, 음식점에서도 배달 주문이 많다 보니 시민들이 체감하는 불편은 더 컸다. 케이티는 초기에 원인으로 디도스 공격을 지목했다가 약 2시간 만에 네트워크 경로설정 오류 때문이라고 밝히며 혼선을 빚었다.

이날 오전 줌 등 온라인 회의 플랫폼으로 강의가 진행되는 대학교에서는 ‘휴강’이 속출했고, 전국 학교와 유치원 등에서도 인터넷 서비스 사용에 불편을 겪었다. 교육부는 이날 오전 11시 20분부터 정오까지 KT 통신망을 사용하는 전국 12개 교육청 7742개 학교·유치원과 기관에서 인터넷 서비스에 불편을 겪었다고 밝혔다. 공공학습 관리시스템인 이(e)학습터와 <교육방송>(EBS) 온라인클래스로 원격 수업을 하던 학생 중 일부도 접속 오류를 겪었다.

재택근무를 하던 회사원들이나 은행, 병원, 증권사도 우왕좌왕했다. 강북의 한 회사에서 일하는 박아무개씨는 “인터넷이 먹통 돼 오전에 계획한 일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은행에서 일하는 이아무개(30)씨는 “비대면 온라인으로 고객들의 예·적금 상품 가입을 진행하고 있는데, 본인 확인 절차에서 과정에서 휴대폰 인증이 안 돼 상품 가입에 차질을 빚었다. 결국 가입하지 못한 손님이 다시 은행을 찾았다”고 말했다.

증권사 홈트레이딩 시스템(HTS)과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 등의 접속 오류로 증권사와 투자자 모두 불편을 호소했다. 증권사에 재직 중인 ㄱ씨는 “갑자기 트레이딩이 멈춰서 콜센터가 전화로 불났다”며 “오늘 주가도 좀 내리는 상황에 카카오페이 청약도 있는 날이었다. 그나마 복구돼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도 진료비 수납이 어려워 환자들의 진료비를 미수금으로 처리한 사례도 이어졌다.

특히 인터넷 장애가 점심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자영업자와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식당과 카페 등에서는 큐아르(QR)코드 체크인은 물론 주문과 결제를 받는 포스기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전 11시40분께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는 포스기 화면이 모두 검은색으로 변해 멈췄고, 마침 결제를 하던 직원과 손님 모두 당황해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는 “포스기를 이용한 주문과 결제가 안 된다”며 손님들을 돌려보내기도 했고, 다른 식당은 “계좌이체와 현금결제밖에 안 된다”며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배달플랫폼 배달의 민족 관계자는 “케이티망을 사용 중인 업주의 경우 주문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3년 전 서울 서대문구 케이티 아현지사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인근 지역의 유·무선 통신이 두절됐던 ‘케이티 아현국 사태’가 떠올라 불안에 떨었던 자영업자도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한 식당 주인은 “3년 전처럼 오늘도 배달 주문 하나 못 받았다”며 “당시 손실 보상을 신청했지만 100% 받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제대로 보상해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디도스 공격 때문”이라고 공식 발표했던 케이티는 약 2시간 만에 네트워크 경로설정 오류 때문이라고 밝히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케이티는 “초기에는 트래픽 과부하가 발생해 디도스로 추정했으나, 면밀히 확인한 결과 라우팅(네트워크 경로설정) 오류를 원인으로 파악했다”며 “정부와 함께 더욱 구체적인 사안을 조사하겠다. 통신 장애로 국민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알렸다. 케이티 인터넷 장애를 계기로 “이번 기회에 옮기시라”며 마케팅을 하는 경쟁 이동통신사 판매점 문자가 왔다는 경험담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경찰은 정확한 사고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케이티 본사가 분당에 있는 점을 고려해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케이티 인터넷 장애와 관련한 현장조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한겨레

KT 인터넷망 장애로 25일 오전 경남 창원시 한 무인 카페에 ‘네트워크 연결 상태 확인 요망’이라는 알림 메시지가 떠 있다. 창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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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연 박수지 이주빈 박지영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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