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호 청주중 교장이 24일 희망얼굴 전시회에서 노길심 요양보호사를 소개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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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얼굴 전도사’ 지선호 청주중 교장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모든 사람이 희망입니다.”
지선호(60) 충북 청주중 교장은 ‘웃는 얼굴을 그리는 선생님’으로 통한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2500여 명이 넘는 인물의 캐리커처를 그렸다.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기법으로 A4용지 크기 화선지에 얼굴을 그리고 나면, 얼마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공유한다.
그래서 지 교장을 아는 사람 중에는 소개 사진을 초상화로 교체해 놓는 이가 많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제자들이나 선행을 한 자원봉사자, 교원, 유명 인사 등이 얼굴 그림의 주인공이다.
지 교장은 2017년에 이어 올해도 자신이 그린 희망 얼굴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했다. ‘힘내라 대한민국, 천 개의 별’을 주제로 지난 22일부터 열흘간 청주시 서원구 미평동더블루체어 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다. 그가 추린 얼굴 그림 1000장이 걸려있다.
24일 전시회장에서 만난 지 교장은 “익숙해졌지만, 그림 빚기가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화선지에 붓 펜으로 스케치를 하고 물감으로 채색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얼굴 그림 밑에는 주인공을 대표하는 짧은 문구를 넣는다.
지선호 교장이 그린 오징어 게임 주인공 배우 이정재(가운데). 최종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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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선지에 붓 펜으로 완성…SNS에 공유
지 교장은 “캐리커처 전문가들은 얼굴 특징을 살려 5분 안에 완성하지만 나는 1명당 40분 정도 할애한다”며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도 1~2시간씩 고민한 끝에 문구를 지어 마무리한다. 추천 인사가 많아질수록 고민이 더 깊어진다”고 말했다. 최근 토종벌 명인에 선정된 청토청꿀 김대립 대표 얼굴을 그리기 전에는 양봉장이 있는 메밀밭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기도 했다.
지 교장은 1987년 충남 홍성 결성고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다. 이후 충북으로 옮겨 국어와 한문을 가르쳤다. 그림에 관심을 가진 건 청주시 가경중 교감으로 재직하던 2015년 7월 여름방학을 앞뒀을 때였다. 그는 “당시 2학기 자유학기제 시행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본인이 이루고 싶은 꿈과 소망을 고민하는 시간을 줬다”며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나는 과연 저 나이에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란 자문을 하다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 교장은 캐리커처 주인공은 웃는 얼굴이 많다. 그는 “그림 자체로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고, 희망을 주는 게 애초 목표였다”며 “만화 주인공이 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흰머리는 조금 검게, 주름살도 줄이고 없는 귀걸이를 걸어줄 때도 있다”고 했다.
청주시 더블루체어 아트홀에 ‘힘내라 대한민국, 천 개의 별’을 주제로 1000명의 희망얼굴이 전시돼 있다. 최종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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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빚기 만만치 않아” 메밀밭 찾아가 인터뷰
그의 작품은 봉사왕, 전통시장 상인, 기업인, 공무원, 운동선수, 연예인, 시민단체 활동가, 예술인 등을 망라하고 있다. 최근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배우 이정재와 배구선배 김연경, 그룹 가수 방탄소년단,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등 대한민국을 빛낸 인물도 있다.
지 교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 노길심(66) 요양보호사를 꼽았다. 노씨는 지난해 12월 청주의 한 요양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했을 때 동일집단 격리된 70~80대 환자를 돌봤다. 지 교장은 “노씨가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돕기 위해 요양원에 다시 돌아갔다가 확진됐다는 소식을 듣고 힘을 보태고 싶었다”며 “건강을 회복한 노씨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휘귀병을 앓고 있는 증평 형석중 1학년 정도운(14)군도 지 교장의 희망 얼굴 그림을 받았다. 지 교장은 “도운군을 격려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는데 이후 지역사회 관심이 커지면서 학생의 병원비 마련을 위한 자선바자회까지 열려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선호 교장이 희귀병을 앓고 있는 정도운군을 돕기 위해 그린 희망얼굴. 최종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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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교장은 자칭 ‘감초 교장’이다. 34년 전 충남 홍성 결성고에서 처음 교편을 잡을 때 제자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지 교장은 “축구를 할 때나 그림을 그릴 때, 수업할 때 ‘선생님이 꼭 있어야 재미있다’며 제자들이 감초라고 불러줬다”며 “내가 그린 그림이 희망과 희망을 연결해 주는 감초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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