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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고분양가 심사제 개편하면 … 끼리끼리 분양가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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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름 기자]

지금껏 정부는 '고분양가 심사'를 진행해왔다. 분양가가 고가라면 분양 보증을 거절해 사실상 '규제'를 꾀하는 방식이었다. 민간업체들은 "공급이 위축된다"며 끊임없이 반발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고분양가 심사 방식'을 바꿨다. 인근 아파트 전체를 보는 대신 유사 아파트의 평균 시세와 비교하는 거다. 고분양가 기준을 바꾼 셈인데, 정부가 기대하는 '공급 효과'가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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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7개월만에 고분양가 심사 기준을 또다시 바꿨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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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가격은 상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정한다. 투입한 원료의 원가, 생산 설비 비용, 임대료, 인건비 등의 총합을 따져서다. 이 가격은 저렴할 수도 있고 비쌀 수도 있다. 비싼 가격으로 한정된 소비자에게 팔아 수익을 낼 것인지, 박리다매 전략을 취할 것인지는 회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하지만 주택 가격은 조금 다르다. 국민의 주거권과 연관되기 때문에 주택을 만드는 업체가 맘대로 값을 설정할 수 없고, 정부 정책과도 맞물린다. 소비자 입장에서 비싸다고 포기할 수 있는 상품도 아니다. 정부가 공공주택을 만들고 민간 아파트의 사업을 보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아파트 분양사업의 보증을 위해 '고분양가 심사제도'를 운영해왔다. 분양가 조건을 만족하는 아파트 사업장만 '보증'하는 게 골자다. 새롭게 분양하는 아파트와 가까이 있는 '인근 아파트'의 가격을 비교해 분양가가 높은지 여부를 따진다.

당연히 주택 사업자들이 좋아할 제도가 아니다. 책정한 분양가가 고가로 평가받을 경우 분양보증을 받을 수 없어서다. 아파트 분양업체로선 HUG의 분양보증을 받아야만 중간에 자금 등의 문제로 사업을 포기하거나 공사가 중단돼도 새로운 업체에 사업을 넘길 수 있다. 수분양자들 역시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만큼 분양보증은 중요한 절차로, 고분양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실상 아파트 분양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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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고분양가 심사제도'가 자유로운 가격 책정을 막는 걸림돌이라고 지적해왔다. 수년간 끊임없이 이어진 지적에 정부가 움직였다. 지난 9월 9일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고분양가 심사'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국토부와 주택공급업체가 참석한 '제2차 주택 공급기관 간담회'에서 노 장관은 "고분양가 심사제나 분양가 상한제 등의 애로사항을 확인하고 개선이 필요한지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한달도 지나지 않아 국토부는 '고분양가 심사제'의 개선ㆍ보완책을 발표했다. 심사 기준을 세세하게 공개하고 시세를 산정할 때 '인근 지역의 유사 사업장'을 기준으로 삼는 게 보완책의 골자다. [※참고: 지난 2월 고분양가 심사제 보완책이 처음 발표됐지만 주택공급업계의 민원은 계속됐다. 9월 발표된 보완책 개선안은 사실상 두번째 대책인 셈이다.]

비슷한 아파트끼리 비교한다면

HUG가 개선한 고분양가 심사 기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신규 분양가의 고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인근 시세를 파악해야 한다. 이전엔 분양하는 아파트의 인근 아파트 평균 시세를 기준으로 잡았지만 바뀐 기준에선 '(인근 아파트) 유사 사업장'의 평균 시세가 비교점이 됐다. 유사성은 '점수'로 환산하는데, 단지 규모(세대 수) 건폐율 신용평가 시공능력평가순위 등이 척도다.

가령, 1000세대 이상의 대단지는 대단지 아파트와 비교하고 그중에서도 비슷한 시공능력평가순위를 가진 시공사가 만든 단지가 있다면 더 높은 '유사성'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신용 평가는 HUG가 자체 심사하고, 시공능력평가순위는 자본금, 기술자 수 등으로 따진다. [※참고: 시공사가 단순 도급을 하더라도 분양가 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도시정비사업 등에서 시공능력평가순위가 높은 건설사를 원하는 경향도 심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울러 시세 산정을 위해 아파트 연식에 따른 '가산율'도 공개됐다. 준공 후 5년까지는 100%, 준공 후 20년이 지난 아파트는 현재 시세의 151%까지 인정하는 거다. 이 가산율은 매년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새롭게 반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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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양가 심사제 기준을 바꾼 이유는 민간 공급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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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HUG가 '고분양가 심사제도'에 변화를 준 건 주택 공급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HUG 측은 "민간으로부터 사실상 분양가를 통제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었다"며 "고분양가 심사제도 탓에 사업자가 위축돼 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나고 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결국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 지역에선 시장 공급가를 올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게 달라진 고분양가 심사제도의 골자다.

그럼 이 선택은 주택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확신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조금은 느슨해진 '고분양가 심사제도'를 적용하는 지역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지역을 제외한 곳이기 때문이다.

[※참고: 사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미치는 곳은 협소하다. 2019년 12월 17일 기준 서울 강남ㆍ서초 등 13개구 전체와 강서, 노원, 동대문, 성북, 은평구 일부다. 이에 따라 구로, 금천, 중랑, 관악, 종로, 강북, 도봉구 등은 분양가상한제 예외 지역이다. 경기도로 범위를 넓히면 최근 개발 이슈가 많은 성남시, 남양주시에도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고삐 풀면 공급 늘까

이처럼 '고분양가 심사제도'를 적용할 지역이 넓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슷한' 아파트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산정할 수 있다면 공급이 늘 수 있지만, '고분양가' 기준이 달라져 분양가가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서울이든 경기도든 분양가격이 더 상승할 수 있다는 건데, 이는 정부가 바라는 '공급 효과'와 거리가 멀다. 실질적으로 '분양받을 만한' 주택이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어서다.

HUG는 '고분양가 심사제도'가 분양가 산정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민간사업자가 주택 공급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기존 제도에 변화를 줬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결국 이 선택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도 하나다. 9월 바뀐 '고분양가 심사제도'가 얼마나 많은 민간 공급을 이뤄내느냐, 또 그 공급이 가격을 얼마나 떨어뜨리냐다. 과연 정부는 원하는 정책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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