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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칼럼] ‘4만원’ 수당이 없어서 정인이가 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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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부모의 잔인한 학대 속에 정인양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됐다. ‘정인이 사건’은 많은 사람의 공분을 일으켰고, 양모는 1심에서 무기징역, 양부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항소했고 지금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제2의 정인이를 막겠다며 정부와 국회는 대책을 내놓기 바빴다. 정인이 사건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가 세 차례나 있었지만 서울 양천경찰서 소속 학대예방경찰관(APO)들은 무관심했다. 정인이를 살릴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지나갔다.

정인이 사건이 전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자 경찰청은 지난 1월 부랴부랴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방안’을 내놨다. 문제가 된 APO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인력을 충원하고 인센티브를 늘리는 조치도 발표됐다.

아동학대 사건을 전담하는 APO는 전국에 669명뿐인데 2023년까지 260명을 추가로 채용하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현장 경찰들이 기피하는 APO에 대한 인센티브 차원에서 수당을 신설하겠다고도 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1월에 발표한 대책의 진행 상황을 알렸다. 그는 여러 제도적 조치를 언급하며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정비가 ‘어느정도 완료됐다’고 했다. APO의 인센티브 차원에서 신설하기로 한 수당도 ‘월 4만원’으로 잠정 결정됐다고 밝혔다.

정말 이걸로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정비가 완료된 걸까. 경찰이 내놓은 대책들은 사실 진작 했어야 할 것들이다. 경찰청이 APO를 만든 건 2016년 4월이다. 경찰은 그때 2017년에는 APO를 1000명까지 늘리겠다고 했었다. 그 1000명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번에 대책이라도 내놓은 260명 증원이 이뤄져도 여전히 1000명이 안 된다. 2017년에 하겠다고 한 걸 2023년까지도 못 하는 판이다.

아동학대 112신고 접수 건수는 2017년 1만2619건에서 지난해 1만6149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8월까지 집계한 건수가 이미 1만7379건으로 작년 전체보다 많다. 아동학대 신고가 급증하고 있으니 APO를 늘리는 게 선제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저 현상유지,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월 4만원’의 수당은 현장 경찰들이 기피하는 APO를 ‘희망 보직’으로 바꾸는 유인책이 될 수 있을까. 현장 경찰들이 APO를 기피 보직으로 꼽는 건 과중한 책임과 소송에 대한 부담 때문이지 ‘월 4만원’ 수당이 없어서가 아니다.

정인이 사건 때 한 경찰이 경찰청 블라인드에 올린 글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학대아동을 부모와 분리조치했지만 그 뒤로 부모에게 온갖 죄목으로 민·형사 소송에 시달려야 했다고 털어놨다. ‘면책’이야말로 학대예방 업무의 핵심인 이유다. 하지만 정인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도록 면책 규정 도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면책 규정 도입은 국회의 몫이라는 입장이다. 그말이 맞다. 국회가 법을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정인이 사건 1주기를 맞아 아동학대 정책과 조치가 어떻게 달라졌냐는 질문에 경찰청장은 다른 답을 했어야 한다.

‘정비가 어느정도 완료됐다’는 말은 정인양을 지키지 못한 경찰의 수장이 할 말이 아니다. ‘APO에 대한 면책 규정 도입을 국회가 더 서둘러 달라’거나 ‘5년 전 APO 출범 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 2023년보다 더 앞당겨서 APO를 증원하겠다’고 했어야 할 일이다.

이종현 기자(i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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