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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털끝만큼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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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털끝만 한 차이에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일어난다.(毫釐之差 天壤以謬)” 16세기 조선의 대학자 이언적은 이렇게 말하며 매사에 신중을 더하였다(<회재집>, 6권). 처음에는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시간이 갈수록 그 틈이 벌어져 결국에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마는 것이 적지 않다. 이러한 깨침은 본래 유학자들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8세기 중국 불교의 고승에게서 나왔다(승찬, <신심명>). 옛날 명의들도 ‘호리’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세종 때 완성된 <의방유취>(1권)에는 ‘호리천리(毫釐千里)’라며, 털끝 차이가 천리까지 멀어진다는 표현이 있다. 의원이 진맥을 잘못하면 생사람을 죽이는 수가 있다는 경고이다.

경향신문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요즘 서양 근대역사를 공부하다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18세기 유럽에는 내로라하는 계몽사상가가 여럿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주목한 것은 프랑스의 백과전서파였다. 알다시피 디드로와 달랑베르 같은 이는 시민을 일깨우기 위해 백과사전을 편집했다. 볼테르를 비롯하여 몽테스키외, 케네 및 루소 등이 필진으로 활약하였는데, 그들 계몽사상가는 인간의 본성을 깊이 연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단다. ‘인간은 삶을 즐겁게 만드는 선행을 추구하는 반면에, 불행의 원천이 되는 악행을 회피한다.’ 현대인이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주장이나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신선한 명제였다.

그런데 말이다. 만일에 프랑스 계몽사상가들의 이러한 철학적 명제가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전달되었더라면 어떤 반응이 일어났을까. 선비들은 아마 박장대소하며 환영하였을 법하다. 깊이 따질 것도 없이, 그것은 맹자의 성선설과도 흡사하였다. 18세기 조선 선비들은 마침 심성론을 깊이 연구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개)도 본성은 착하다든가, 아니라든가 하면서 진지한 논쟁을 벌였다(인물성동이론). 그 결론이 어찌 되었든 간에 선비들은 인간의 본성 회복을 위해서 노심초사하였고, 그리하여 한 가지 공론에 도달하였다. 즉, 선한 본성을 되찾을 수 있게 선비는 항상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심(私心)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이 군자라고 확신하였다. 조금이라도 염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불로소득을 얻으려고 상업에 종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재물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도덕적 타락이라고 믿는 선비가 조선에는 차고 넘쳤다.

시작은 똑같은 성선설이라도 계몽사상가들의 생각은 사뭇 달랐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이유가 사라진다.” 인간의 본성이 착하므로,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자연권을 보장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었다.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권리, 즉 자유와 평등권을 수호하는 데 앞장선 이들이 바로 계몽사상가였다. 개인의 인권을 옹호할 때 그들은 자유롭게 부를 추구할 개인의 권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자유란 무엇보다도 개인의 사적 재산권을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였다.

계몽사상가들의 주된 관심사는 도덕심의 연마가 아니라, 절대왕정이라는 낡은 정치체제와의 대결이었다. 알다시피 유럽의 군주들은 기독교 교리를 빌려 자신들의 권리만 내세웠다. 군주의 안중에는 개인의 자연권 따위는 사소한 것이었다. 이러한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 계몽사상가들의 꿈이었다. 과연 그들의 소망대로 1789년에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낡은 왕정이 무너지고 부르주아가 이끄는 공화정이 성립되어 인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성선설이라는 하나의 이론도 시간이 흐르자 동서양의 종착점은 서로 완전히 달랐다. 현대 한국사회는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설마 현재까지도 개인의 도덕적 완성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년에 대선이 있건마는 미래를 개척할 굵직한 계획은 별로 보이지 않고,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인신공격만 난무한다. 뜻 있는 시민들의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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