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크스 조성·분양 비오토피아 주민회 국도·지방도 약 8㎞ 사유화
"도로법 위반해 누리려는 불법적 이익" 법원 판결도, 행정명령도 모르쇠
비오토피아 지적도 |
박석전(50) 씨는 지난 8월 30일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비오토피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다가 이 같은 외침에 걸음을 멈춰 섰다.
비오토피아 보안관리 직원 A씨가 도로를 따라 걷던 박씨를 제재한 것이다.
박씨가 "여기는 공공도로인 것으로 아는 데 왜 통행을 막느냐"고 묻자 A씨는 '주민회 매뉴얼'이라며 계속해서 박씨를 막았다.
게다가 상호 시비를 목격한 비오토피아 주민이 경찰까지 부르면서 박씨는 식사하러 왔다가 최악의 기억만 남기게 됐다.
박씨는 "내가 산책하는 도로가 공공재인 것을 아는 데도 주변 토지가 사유지라면서 공공도로도 걷지 못하게 막무가내였다"며 "그야말로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출동한 경찰도 이러한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어영부영 대충 상황만 수습하고자 했다"며 "행정이 공공재 사유화를 부추기는 모양새였다"고 말했다.
비오토피아는 제주의 '베벌리힐스(Beverly Hills)'로 불리는 고급 주택단지다. ㈜핀크스가 조성해 분양한 이곳에는 분양 당시 가격이 1채당 최저 10억원에서 최고 35억원에 달하는 고가 주택들이 지어졌다.
현재는 SK핀크스가 관리 업무를 맡고 있으며, 유수의 기업 회장과 유명 연예인, 작가 등이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비오토피아 주민회가 단지 내 국도와 지방도 등 공공도로를 사유화해 도민과 관광객들의 통행을 제한하면서 수시로 분쟁이 일고 있다.
17일 서귀포시 등에 따르면 비오토피아 주민회는 단지 내 각 주택의 담장이 없거나 매우 낮게 조성돼 외부인이 통행할 경우 주민의 사생활과 안전을 침해할 경우가 있다는 이유로 2014년부터 주 진입로에 경비실과 차단기를, 또 다른 진입로에 화단을 설치해 외부인 출입을 막고 있다.
통제된 비오토피아 주 출입구 |
이로 인해 도민과 관광객은 각 진입로에서부터 비오토피아레스토랑, 수풍석뮤지엄, 비오토피아 주택 단지까지 이어지는 약 8㎞(1만5천498㎡)의 국도와 지방도를 자유롭게 통행하지 못하고 있다.
레스토랑과 박물관 이용자는 사전 예약을 통해 진입로 내부로 출입 가능했지만, 이마저도 셔틀버스를 통해 출입해야 하는 형편이다.
서귀포시는 2018년 지방선거 때 비오토피아의 공공도로 사유화 논란이 불거지자 같은 해 6월과 8월, 9월 세 차례에 걸쳐 비오토피아에 경비실과 화단에 대한 자진 철거를 요구하는 안내문을 보냈다.
이에 비오토피아 주민회는 '공유지 사용이 도로법상 위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접수하며 맞섰고, 서귀포시는 2020년 2월 경비실과 차단기, 화단 모두를 철거하라는 원상회복 명령으로 응수했다.
하지만 도와 서귀포시가 강제 철거 등 대집행 절차에는 나서지 않고 시간만 지체하는 사이 지난해 11월 비오토피아 주민회가 원상회복 명령 취소와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 잇따라 제기했다.
주민회 측은 1심 재판에서 "단지 내 각 주택의 담장이 없거나 매우 낮게 조성돼 있어 외부인들이 단지 내부를 통행할 경우 사생활과 안전을 침해할 경우가 있어 방범 활동을 목적으로 차단기 등을 설치했다"며 "외부인은 사실 주택단지 내부 도로를 이용할 권리나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지난 7월 진행된 선고 공판에서 서귀포시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일반 대중이 도로를 통행한다고 해서 인근 주택 거주자의 주거 평온과 안정,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더 나아가 입주민들이 도로를 통행하는 것은 괜찮고, 외부인들이 통행하면 사생활이 침해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비오토피아 주민회 측의 행태를 "도로법까지 위반하며 누리려는 불법적 이익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주민회는 이 같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 첫 공판은 지난 13일 진행됐다. 오는 12월 24일 원고인 주민회 측의 마지막 변론이 있을 예정이다.
이와 관련 강호진 제주주민자치연대 전 대표는 "해당 도로는 SK핀크스 측이 비오토피아 대지조성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일부 국유지를 무상양도 받는 대신 기부채납한 것"이라며 "엄연한 공공도로를 주민회가 사적 재산인 것처럼 이용하는 것은 상식이나 사회 통념에 맞지 않는 갑질"이라고 비판했다.
강 전 대표는 "주민회가 제주를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행정과 법적 갈등을 빚지 말고 해당 도로를 당연히 모든 사람과 공유해야 한다"면서 "비오토피아가 조성되며 경관이 사유화된 측면을 고려해서라도 공공도로를 도민에게 즉시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비오토피아 공공도로 사유화 관련 민원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며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최종 승소 시 국유재산에 대한 원상회복 조치에 곧바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dragon.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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