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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계획만 화려했던 여친 살인미수 일당, 범행 성공했어도 보험금은 못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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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현의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판결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합니다.

조선일보

12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법에서 살인미수 혐의를 받는 고교 동창생 3명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남자친구 역할을 한 A(19)씨, 흉기를 휘두른 B(19)씨, 도주 차량 운전을 하기로 한 C(20)씨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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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보험금을 노리고 여자친구를 살해하려 한 A(19)씨와 고교동창생 두 명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먼저 ‘남자친구’ 역할을 맡은 A씨가 채팅 앱으로 여자친구를 사귀었고, 만난 지 50일을 기념해 전남 화순군의 한 펜션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보험설계사였던 A씨는 여자친구의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5억원의 보험금 수령인을 자신으로 지정해둔 상태였습니다. 보험 가입 후 석 달이 지나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되자 범행 계획을 실행에 옮긴 건데요, 해당 펜션을 3차례나 사전 답사했습니다. A씨는 “이벤트를 준비했다”며 으슥한 숲 속으로 여자친구를 혼자 보냈고, 그를 기다린 건 ‘괴한’ 역할의 B씨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피해 여성은 강렬히 저항했고, B씨가 준비한 1000원짜리 흉기는 손잡이가 부러졌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이 경사면으로 함께 굴러떨어지면서 B씨의 범행은 실패했습니다. 범행 직후 도주 차량을 가져오기로 한 C씨는 차량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면서 출발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피해 여성은 가까스로 도망쳤고, 펜션 주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이들을 체포했습니다.

◇가족이 아니어도, 3개월만 보험금을 내면 생명보험금 수령이 가능한가요?

보험 계약은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입니다. 수익자를 가족으로 제한하거나 보험금 지급 가능 기간을 마냥 길게 설정할 수는 없습니다. 보험 계약마다 말 못할 사연이 있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특히 생명보험에 가입할 때는 수익자를 신중하게 생각하실 것을 권고해 드립니다.

다만,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보험에 가입한 지 불과 40여 일 밖에 되지 않은데다 범죄 피해로 사망한 보험자의 보험금을 가족도 아닌 제3자가 받게 되어 있는 이 사건에서 A씨가 보험금을 받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A씨의 계획대로 범행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보험금은 못 받는 거였네요?

그렇습니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에 따르면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자, 혹은 보험금을 받을 사람 등 보험금 지급에 관한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의 행위가 보험 사기로 의심할 만한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금융위원회에 보고할 수 있습니다. 또 금융위원회나 보험회사는 관할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모든 보험사마다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을 두고 있고요, 보험회사는 계약의 제반 사정을 살펴 지급이 타당할 때에만 보험금을 지급합니다.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애초 만남부터 살인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A씨와 일행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요?

3명 모두 살인미수죄로 처벌받습니다. 이들 모두 범죄 수행에 필수 불가결한 역할, 법적으로는 ‘기능적 행위지배를 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절도범죄에서 직접 물건을 훔치지는 않고 밖에서 망만 본 경우, 망보는 것도 절도에 꼭 필요한 역할 분담을 한 것이기 때문에 절도죄 방조범이 아니라 절도죄 공범이 됩니다.

사건으로 돌아가서 50일 이벤트를 준비한 A씨는 보험 계약 체결을, B씨는 현장에서 실행 행위를, C씨는 도주를 위한 자동차 준비를 했다는 점에서 공범 성립에 필요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들은 모두 살인미수죄가 성립합니다. 다만 각자 수행할 역할 분담에 따른 비난의 정도가 다를 수 있어 선고되는 형량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적용한다면 5억원에 대한 벌금까지 가능

보험사기를 엄중하게 처벌하기 위해 2016년 앞서 말씀드린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제정됐습니다. 이 법에서는 보험사기 행위로 보험금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보험금을 취득하게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합니다. 또 상습범에게는 더 중한 처벌을 내리고, 미수범 역시 처벌합니다.

뿐만 아니라 보험사기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형량이 살인죄와 같습니다. 보험사기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는 3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해야 합니다. 동시에 보험사기 이득액에 상당하는 벌금 또한 물릴 수 있습니다. 살인죄는 징역형만 가능할 뿐 벌금형을 추가로 부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보험사기 행위’란 보험사고의 발생, 원인 또는 내용에 관해 보험회사를 기망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A씨 일당이 보험금 청구를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예비단계인 겁니다. 아쉽게도 예비단계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만약 이 사건의 피의자들이 보험금을 지급해 달라고 청구했다면 보험사기 미수로 처벌할 수 있었을 겁니다.

자신들 삶을 멋지게 살아보겠다고 사람 생명을 죽여 보험금을 받고자 한 이들의 범죄는 ‘극단적 인명 경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이 행한 여죄를 모두 밝혀 제대로 된 처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조선일보

승재현 한국형사정책법무연구원 연구위원.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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