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5 (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가족 갑질 제재’ 14일부터 시행…5인 미만 사업장 빠져 ‘실질효과 한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개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사장 배우자·친인척 괴롭힘 제재

과태료 최고 1000만원 부과

"형사처벌 아닌 과태료 아쉬움"

헤럴드경제

14일부터 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되면서 가해자가 사장이나 사장의 배우자, 4촌 이내 친인척일 경우 1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기존에는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 조항이 근로기준법상에 마련되지 않았다. [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경기도 화성에 거주하는 A씨는 인근에 있는 한 가족 회사에 다닌다. 회사 사장의 동생이 팀장이고, 그의 아들도 대리로 근무를 한다. A씨는 직접적으로 이 두 사람과 기획업무를 맡아 진행했다. 그런데 대리로 근무하는 사장의 아들이 일을 태만히 하면서 A씨와 몇 번의 마찰이 있었고, 이후 팀장의 A씨에 대한 폭언이 심해졌다. 해당 팀장은 어느 날부터 ‘야, 너’ 등의 말을 호칭으로 쓰고 “두세 번 얘기하게 할래?” “회사 잘리고 싶어?” “일을 XXXX같이 하네” 등의 폭언을 했다. A씨는 “사장과 직접적으로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라 괴롭힘 고충을 외부에 더 알리기 어렵다”며 “방법이 없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14일부터 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되면서 가해자가 사장이나 사장의 배우자, 4촌 이내 친인척일 경우 1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기존에는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 조항이 근로기준법상에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용자나 그의 친인척이 가해자가 될 경우 과태료 부과를 통해 괴롭힘을 제지할 수 있는 길이 새롭게 열려 A씨와 같은 피해자들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울 수 있게 됐다.

당장 해당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날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30대 오모 씨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회사 사장이나 그의 가족이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할 경우에는 직장인으로서는 정말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회사 사장의 친인척이 아닌 다른 직원이어도 괴롭힘 신고가 쉽지 않은데 가족이 가해자라면 해당 신고를 하기 더욱 어려울 것이기에 이번 변화는 환영할 만하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30대 김모 씨 역시 “당연히 직장인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다만 과태료 형식으로 부과하는 것은 아쉽다. 괴롭힘이 물리적 폭력은 아니지만 이와 관련된 직접적인 형사처벌 조항이 신설됐으면 더 긍정적이었을 듯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러한 사용자 측 괴롭힘에 대한 과태료 부과에도 여전히 법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법이 5인 미만의 사업장에는 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7조에서 상시 4인 이하의 사업장에 적용되는 법 규정의 범위 내에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적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적용을 받지 못한다. 그 결과,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당해도 신고할 수 없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의 신고 규모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연도별 처리현황’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 등으로 법 적용 제외 사업장은 2020년 268건, 2021년 8월 기준 312건으로 총 580건에 달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40대 한모 씨는 “과거에 여러 업장을 돌아다녀봤지만 오히려 5인 미만의 업장은 가족회사가 훨씬 많아 사업자의 갑질이나 사업자 가족, 친인척의 폭언이 훨씬 심하다고 볼 수 있다”며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 신설된 사용자 과태료 조항이 실질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5인 미만의 사업장에도 법 적용이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5인 미만의 사업장은 근로자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점이 많아 사용자 측이 ‘갑질’을 하기 더 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사람은 “연차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해 담당기관 등에 알아보니 5인 미만 사업자라 받지 못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보호받지 못하는 권리가 있다 보니 사장도 자기가 하는 행동이 갑질인지조차 파악 못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심준형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5인 미만의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적용 여부, 휴일제도 적용 여부 등을 대통령령을 통해 정할 수 있다”며 “보호가 필요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개정 법 적용을 하루빨리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헌 기자

raw@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