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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이슈 끊이지 않는 성범죄

[연합시론] 무더기 불기소 '공군 성추행' 수사, 과연 엄정하게 이뤄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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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상관에 의한 성추행 피해를 신고하고 2차 가해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고(故) 이 모 중사사건이 결국 '변죽만 울린 채' 종료됐다. 사건 발생 219일 만이다. 국방부 검찰단은 7일 최종수사 결과를 담아 배포한 자료에서 사건 관련자 총 25명을 형사입건해 15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기소된 15명에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장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부실한 초동수사를 담당한 공군 20비행단 군사경찰과 군검사, 군검찰의 지휘·감독라인에 있는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 등 법무실 지휘부는 모두 배제됐다. 2차 가해 혐의로 추가 고소된 전속부대 상급자들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됐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억울한 죽음'을 개탄하며 엄중한 처리를 지시했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니 결국 핵심 관계자들에게 면죄부만 준 '제 식구 봐주기' 부실수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공군 20비행단 소속이었던 이 중사는 지난 3월2일 선임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즉각 신고했지만, 군검찰의 수사가 진행중이던 5월2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한 당일이자, 본인의 요청으로 다른 부대로 전속한 지 사흘 만이었다. 고인의 동료와 선임 등으로부터 회유와 압박 등 2차 가해에 시달렸다는 주장도 유족들은 제기했다. 이 중사는 청원휴가 이후 소속 부대가 바뀌는 과정에서 전출 관련 문건을 통해 성추행 피해 사실이 해당 부대에 노출됐고, 상당수가 그의 피해 사실을 알던 상황에서 이틀간 부대 내 17곳을 찾아가 전입 신고를 했다고 한다. 며칠 뒤 이 중사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 언론의 보도로 이러한 사실이 처음 알려지자 문 대통령은 지난 6월3일 청와대 참모 회의에서 "피해자의 절망을 생각해 보십시오"라며 목이 멘 채 격노하며 '엄정수사와 조치'를 지시했다.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한달여 뒤 내놓은 중간수사 결과, 이 중사가 피해직후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수사와 피해자 보호, 보고 등 전 과정에서 군의 총체적 부실대응이 확인됐다. 군이 땅에 떨어진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한 단죄에 나서리라 기대했지만, 219일만에 나온 이날 최종결과는 그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부실한 초동수사로 물의를 빚은 공군 군사경찰과 군검찰, 수사 지휘라인의 공군 법무실 관계자가 한명도 포함되지 않은 사유는 하나같이 '증거 부족'이라고 한다. 초기 군사경찰이 블랙박스를 확보하지 않은 것, 군검사가 이번 사건을 송치받고도 55일간 가해자 소환조사를 하지 않다가 언론보도 당일 부랴부랴 소환조사를 한 것 등 부실수사가 증거부족을 불러왔는데, 증거부족이 불기소의 이유라는 것이다. 이 중사의 부친은 국방부 발표직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말만 믿고 신뢰하며 지켜봤는데 피눈물이 난다"며 특검 도입을 요구했다. 유족들은 이 중사가 사망한 지 5개월여가 지난 지금도 시신을 국군수도병원에 안치한 채 장례를 미루고 있다. 유족들의 고통과 절망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군내 성범죄의 심각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중사 사건의 수사가 진행중이던 지난 8월에도 부대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해군의 한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있었다. 유사한 성범죄가 잇따르는 데는 맹탕수사와 솜방망이식 처벌, 물징계가 되풀이되는 게 원인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피해자 죽음의 원인과 무관치 않은 부실 초동수사 책임자는 사법처리 대상에서 배제된 채 변죽만 울린 이번 이 중사 사건의 수사결과는 무척 실망스럽다. 국민 눈높이에 걸맞은 한 치의 의혹도 없는 엄정한 수사가 이뤄졌는지 국방부는 다시 한번 점검하기를 바란다. 또한 군내 성범죄의 신속한 신고와 조사, 피해자보호, 재발방지 방안 등 관련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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