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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여친 죽이고 거짓 신고까지…사랑싸움이 아니라 폭행·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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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정세진 기자] "딸이 '사귀는 것을 남들에게 말했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에게 숨졌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을 때려 죽였다니…"

지난달 숨진 고(故) 황예진씨(25)의 부모 A씨는 딸에게 폭력을 휘둘러 숨지게 한 딸의 30대 남자친구 B씨를 엄벌해달라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180cm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B씨는 '황씨의 머리에 주먹을 휘두르거나 수차례 밀쳤다. 황씨는 3주간 혼수상태로 지내다 결국 숨졌다. A씨가 게시한 청원에는 1달만에 53만명이 동의했다.

연인 간에 벌어지는 폭행·살인 등의 중범죄인 일명 '데이트폭력' 사건이 점차 늘고 있다. 매해 연인으로터 폭행·상해를 당했다는 신고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수법도 점차 잔혹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데이트폭력을 '사랑 싸움'으로 치부하는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자친구 때려 죽인 뒤 거짓 119 신고까지 했는데"…뒤늦은 구속에 뿔난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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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경찰서는 황씨의 남자친구 B씨를 지난 17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서부지검은 오는 10월 6일 이전 B씨의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서부지검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은 구속기간을 연장해 충분히 조사 후 결정한다"며 "B씨의 경우도 구속기간이 1차 연장됐다"고 설명했다.

B씨는 지난 7월 25일 황씨가 거주하던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 로비에서 말다툼을 하다 황씨의 머리를 때리고 벽에 밀치는 등 수차례 폭행해 숨지게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황씨가 주변 지인들에게 자신과 연인이라는 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119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 거짓으로 신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B씨의 도주우려가 없다'며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A씨는 "우리 가족은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고 있는데 가해자는 여전히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무 일 없는 듯 생활하고 있다"며 엄벌을 호소하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황씨의 사촌으로 알려진 지하철 기관사가 청원 참여를 독려하는 안내방송을 하기도 했다. 이 청원에는 마감일 기준 53만여명이 동의했다.

경찰은 황씨를 부검하는 등 추가 수사를 거쳐 재차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결국 법원은 지난 15일 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황씨처럼 데이트폭력에 시달리다 상해를 입거나 심지어는 숨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나 사법기관의 대처가 부적절했다는 목소리다.

실제 연인이나 배우자로부터 데이트폭력을 당하는 사례는 점차 늘고 있다. 이은주 의원(정의당)이 경찰청에서 받은 '최근 5년간 데이트폭력 유형별 신고 건수·입건·조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2020년 데이트폭력 사건은 총 4만 7755건이었다. 데이트폭력으로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된 사례는 227건으로, 열흘에 한 명은 연인의 살인·살인미수에 시달렸다.

범행 형태도 다양하고 잔혹해지고 있다. 지난 7월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는 옛 연인을 폭행한 뒤 폭행 사건에 합의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옛 여자친구에게 10여차례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남성에게 징역 27년을 선고했다. 2019년에는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해 여자친구를 납치한 뒤 자신의 차량 트렁크에 싣고 다니던 남성이 붙잡히기도 했다.


'사랑싸움 아니고 데이트폭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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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은 데이트폭력 예방과 근절이 어려운 이유로 당사자 간의 사적 관계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꼽는다. 일선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한 수사관은 "연인 간 싸움의 경우 신고를 접수하더라도 피해자가 '다 해결됐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철수할 수밖에 없다"며 "폭행이나 협박 등은 반의사불벌죄(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처벌하지 아니하는 죄)이기 때문에 수사관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데이트폭력에 대해서 근본적인 인식 개선과 함께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기의지가 강한 피해자도 정서적으로 친밀한 부부나 연인관계에서 발생한 폭행을 신고하기는 어렵다"며 "처벌이 가볍다 보니 피해자가 향후 보복을 두려워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 반의사불벌죄는 실익이 크지 않다"고 했다.

부부와 연인 간 다른 규정을 적용하는 현행법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데이트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부부간에는 가정폭력처벌법(가폭법)을 적용하고 연인간에는 일반 형법을 적용한다"며 "법률혼 여부에 관계 없이 법 적용의 목적을 피해자 보호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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