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트랜스젠더 무당도 있고, 비건(채식주의자) 무당도 있고, 하나님과 부처님을 믿는 무당들도 있다. 무당에게 가장 중요한 건 공감과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
무속계에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부적을 몸에 새길 수 있도록 타투 도안을 그려주기도 하고, 유튜버로 변신해 아이돌 춤을 추고 음식 먹방을 하기도 한다. 신당에 오방색 한복을 입고 앉은 채 향을 피워 놓고 미래를 꿰뚫는 ‘신들린 무당’의 이미지가 아니라 ‘아는 언니’ 같은 친근한 이미지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MZ 무당’들은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점과 운세, 타로를 봐주고 복채는 돈 봉투 대신 ‘좋아요’와 ‘구독’으로 받기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문화가 이런 변화를 이끌었다. 특히나 인터넷에 익숙한 MZ세대의 반응이 뜨겁다.
무속인 유튜버들의 콘텐츠는 굿이나 신점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튜버 ‘쌍문동애기선녀’는 구독자 수 27만명을 보유한 대표적인 ‘MZ 무당’이다. 이 채널에 올라온 소고기 먹방 영상은 조회수 18만회를 기록했고, 아이돌 트와이스의 ‘치얼업’ 안무 영상과, BTS의 ‘버터’ 안무 영상은 각각 17만회, 15만회를 기록했다.
최근 한 방송에 나와 예능인 유재석씨의 사주를 보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무당 ‘이화도령’은 국내 한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는 점을 살려 거문고 연주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이 거문고 연주 영상 역시 조회수 19만회를 기록했다.
아이돌 춤 안무 영상을 올린 무당 유튜버 '쌍문동애기선녀'와 치킨 먹방 영상을 올린 무당 유튜버 '소원아씨'. /유튜브 영상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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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콘텐츠만 젊어진 게 아니다. 점을 보러오는 손님을 맞는 태도나 자세도 과거와는 180도 다르다. 유튜버 홍칼리(30·본명 홍승희)는 평소 청바지와 원피스를 입고 점을 본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청년들을 위해 전화와 문자뿐 아니라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기도를 받는다.
홍씨가 올린 월별 운세 영상 아래에는 ‘이번 시험 잘 봐서 합격하게 기도해주세요’ ‘대학을 붙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게 기도해주세요’ 등의 댓글이 달린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청년들끼리 댓글을 통해 고민을 나누면 그는 ‘기도하겠다’는 답글을 달아준다. 점을 보러 다니기엔 지갑이 얇은 청년들에게 홍씨의 유튜브 채널이 일종의 비대면 ‘기도 창구’가 된 것이다.
엄하고 무서운 이미지의 전통적인 무당과 달리 ‘경청’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도 홍씨를 비롯한 ‘MZ 무당’의 특징이다. 홍씨가 청바지나 원피스를 입는 것도 점을 보러 온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무당의 트레이드인 ‘쪽진 머리’도 하지 않았다.
90년생 무당 홍칼리씨. /홍칼리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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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씨는 “한 청년이 외국에서 예술작업을 하다가 영감도 안 떠오르고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본인의 일을 포기하기 직전 찾아온 적이 있다”며 “그 청년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평소 꿈을 자주 꾼다고 해서 ‘그럼 그 꿈을 영감 삼아 예술로 표현해보면 어떻겠냐’고 조언한 적이 있다”고 했다. 홍씨는 “그 청년은 지금 꿈과 관련된 예술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예술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심리상담이나 고민상담 해주듯이 점을 봐주는 것이다.
무당을 대하는 ‘2030′ 청년 세대의 반응도 전과 사뭇 다르다.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는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가 앨범을 내기 전에 사주팔자나 운세풀이를 하거나 아예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는 경우도 많다. 아이돌 가수 NCT의 팬이라는 직장인 이모(26)씨는 “친구들과 돈을 모아 앨범이 얼마나 잘 될지 신점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점집을 찾아가기 힘들 땐 무속인 유튜버에게 신점을 보기도 한다. 이럴 땐 ‘슈퍼챗’으로 복채를 지불한다. 슈퍼챗은 유튜브 콘텐츠 구매 플랫폼으로 실시간 유튜브 방송 중인 유튜버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할 수 있다. 구독자만 26만명에 이르는 무속인 콘텐츠 제작사 ‘배짱이엔터테인먼트’는 한 달에 수천 만원의 복채를 슈퍼챗으로 벌기도 했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무당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한다. 홍씨는 부적으로 타투 도안을 그려주고 있다. 그는 자신을 ‘무당’이라는 직업을 택한 평범한 청년 세대라고 설명했다. 하루에는 5건의 신점만 보고 나머지 시간에는 타투 연습을 하고 글을 쓰고 영상을 찍는 등 또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홍씨는 “같은 청년으로서 무당도 하나의 직업이고,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은영 기자(eunyoung@chosunbiz.com);이신혜 기자(shin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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