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를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로 이름을 바꿔 보물 지정 예고했다. “통일신라 당간지주의 전형이다. 귀부(龜趺)형 간대석 적용 수법은 유일해 가치가 높다”고 했다.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 전경.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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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幢)은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깃발로 불보살의 장엄구’다. 당간(幢竿)은 당(깃발)을 걸기 위해 높게 세운 기둥을 말한다. 간대석(竿臺石)은 ‘당간을 받치는 석재단’이다. 당간지주는 당간을 고정하는 지지체이자 조형물로 통일신라 초기부터 사찰 입구에 세웠다.
일제강점기 촬영한 당간지주는 현재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두 지주 사이 당간은 사라졌지만, 귀부형 간대석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귀부형 간대석은 남은 통일신라 당간지주 중에서는 유일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 전경.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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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당간지주의 귀부형 간대석. 귀부(龜趺)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이다.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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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구황동의 당간지주는 분황사 입구 남쪽과 황룡사 사이에 세워졌다. 문화재청은 고대 사찰 가람의 당간지주 배치, 신라 시대 분황사 가람의 규모와 배치 등을 고려하면 분황사에서 활용하려고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황룡사지 입구 쪽에 파손되었지만 황룡사 것으로 보이는 별도의 당간지주도 남아 있다. 문화재청은 이런 근거들에 따라 분황사 소속의 당간지주가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를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로 바꿨다.
분황사는 634년(선덕여왕 3년) 창건했다. 왕실과 중앙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황룡사와 함께 신라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선덕여왕은 643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을 분황사에 머물게 했다.
당간(왼쪽)과 당간지주 구성.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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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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