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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팀장 칼럼]법원도 헷갈리는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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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이미호




최근 부동산업계와 관련된 법적 분쟁의 최대 화두는 단연 ‘계약갱신청구권’이다. 실거주 목적으로 주택을 매수했더라도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를 했을 경우, 임대인이 거절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법원 판단이 엇갈리면서다.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관련 사건을 정리해보면 △수원지법 3월 1심(세입자 승소 판결) △서울중앙지법 5월 1심(집주인 승소 판결) △서울중앙지법 8월 항소심(원심 뒤집고 세입자 승소 판결) △서울동부지법 8월 1심(집주인 승소 판결) 등이다.

해당 판결의 법리적 쟁점을 분석해보면 갱신청구권 분쟁 포인트는 크게 세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임대인 지위 승계 시기(매매계약 체결일로 봐야 하는지 등기 시점으로 봐야 하는지), 세입자 변심 등 구체적 사정의 반영 여부, 갱신거절 주체가 기존 집주인 인지 새 집주인 인지 여부 등에 따라 법원의 해석과 판단 기준이 다르게 나오고 있다.

심지어 지난 8월 서울동부지법 재판부는 집주인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회가 임대차법을 사실상 졸속으로 통과시켰다고 대놓고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입법과정에서 이 사건 쟁점 부분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이뤄졌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고, 이와 관련한 입법자 의사가 명확했다고 볼 수도 없다(판결문 中 일부)”고 판시했다. (‘용기 있는’ 판결을 내린 재판부에 존경을 표한다.)

엇갈린 판단에 따른 시장의 혼란은 심각한 수준이다. 흔히들 이용하는 부동산 카페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곧 계약만료가 다가오는데 사실 집을 팔고 싶다. 개정 임대차 시행전 계약인데 소급 적용 되나’ ‘세입자로 현 집에 계약갱신했는데 중도해지 할 수 있나’ ‘전세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내용증명을 보냈다’ 등 저마다 사정을 언급하며 불안감을 호소한다.

일반 국민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법(法)에 대한 일정한 기대가 있어야 한다.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법에 의해서 예측 가능성이 확보돼야, 장차 나의 행동을 계획할 수 있다.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확보되면 국가로부터 나의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다.

집은 거주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매매계약의 자율성이 없으니, 이사(거주 이전)의 자유도 직업 선택의 자유도 제약받기 마련이다. 법의 기판력은 서민들의 삶에 미세한 부분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은 (도저히 동시에 성립 불가능할 것 같은) ‘미완의 법’이라는 말까지 쓴다.

법원 판결이 엇갈리자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와야 정리 될거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묻고 싶다. 어느 세월에? 필자에겐 ‘대법원 판결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니, 그때까진 집주인-세입자가 혼란을 감당하면서 잠자코 기다려라’라는 무책임한 말로 들린다.

일각에선 헌법재판소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판결까지 시일이 상당히 걸리는 만큼 헌재가 위헌여부를 조속히 판단해줘야 피해를 보는 서민들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석연 변호사(전 법제처장)는 개정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이 헌법 10조 계약자유의 원칙에 정면 위배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1년전 이맘때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그 결과가 연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헌재의 결정이 대법원 판결보다 더 우선한다는 점에서 일견 동의한다.

어쨌든, 그 사이 혼란에 따른 대가는 국민들이 치러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이미호 기자(best22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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