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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안쐈으니 北제재 풀자는 정의용…단거리는 괜찮나? [뉴스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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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외교부 장관(왼쪽)이 22일(현지시간) 미국 외교협회(CFR) 초청 대담에서 파리드 자카리야 CNN 앵커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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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제재 완화의 새로운 공식



“We should not…(우린 그래선 안 됩니다)” “You can do it(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2일(현지시간) 미국 외교협회(CFR) 초청 대담에서 북핵과 관련해서 한 발언이다. 정 장관이 그래선 안 된다고 한 것은 ‘북한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 소심하게(timid) 구는 것’이었다. 정 장관이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인센티브를 되돌리는 것’이었다.

외교적 언어보다는 캠페인에 더 가까워 보이는 표현들에서는 북한을 어떻게든 대화 테이블로 복귀시키려는 간절함마저 느껴졌다.



“北, 4년간 장거리 미사일 안 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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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대북 제재 결의 채택 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오른쪽)와 류제이 중국대사(왼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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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음에 두고 있는 인센티브가 뭔지도 숨기지 않았다.

미국 측은 특히 제재를 완화하거나 해제할 준비가 돼 있지 않지만, 이제는 제재 완화를 고려할 때가 됐다. 왜냐하면 북한은 4년 동안 모라토리엄(핵ㆍ장거리 미사일 실험 유예)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이후로 그들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다.”

대북 인센티브는 곧 제재 완화이고, 근거는 북한의 모라토리엄이라는 논리였다. 언뜻 보면 맞는 말 같지만, 비례성을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제재 완화는 백신 접종 완료했다고 저녁 먹을 때 몇 명 더 모이게 해주는 수준의 인센티브와는 급이 다르기 때문이다.



北, 핵ㆍ장거리 미사일만 유예



북한의 핵 개발은 국제사회가 규정한 불법 행위, 즉 범죄다. 제재는 이미 저지른 범죄에 대한 처벌이자, 앞으로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범죄에 대한 억제책이다. 그리고 북한의 모라토리엄은 진행 중인 범죄 중 일부만 중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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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토리엄에 제재 완화를 인센티브로 주자는 제안을 일반 범죄에 비유해 보자. 칼부림으로 이미 수많은 이들을 다치게 한 조직폭력배가 맨주먹으로는 계속 사람을 때리지만 “흉기를 쓰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켰다. 그러니 이제 벌을 그만 받게 하자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맨주먹으로 때린다고 사람이 안 다치나? 또 이미 다친 피해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이 장거리만 멈췄을 뿐 단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은 계속하고 있고, 이미 만들어놓은 핵물질의 양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제재 완화=인센티브…그냥 주자?



정 장관은 “그들이 (핵ㆍ장거리 미사일 실험을)하지 않은 데 대해 보상(reward)을 주자는 것은 아니지만, 인센티브로서 제재 완화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굳이 분리해 제재 완화는 보상이 아니라 인센티브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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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15일 철도기동미사일연대 검열사격 훈련을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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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북한 이용호 외무상도 제재 완화는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 즉 보상책으로 요구했다.(2019년 3월 하노이 노 딜 뒤 기자회견) 그런데 한국의 외교 장관이 이는 보상이 아니라 인센티브이니 지금 그냥 주자는 식으로 말한 셈이다.

제재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내줄 거라면 제값을 받아야지, 왜 헐값에 못 줘 안달이냐는 것이다. 북한조차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는데 말이다.

단순한 등식이다. ▶북한이 도발(핵ㆍ장거리 미사일 실험)한다=제재를 부과한다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는다=추가 제재를 부과하지 않는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한다=제재를 완화한다. 어려울 것도 없다.



단거리는 괜찮다? 계속되는 의문



그런데도 북한이 추가 핵ㆍ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걸 ‘제재를 완화해줘야 마땅한 행위’로 치켜세우며 새로운 등식을 만들어보려는 정부의 입장은 오히려 ‘다른 위협은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는 바꿔 말하면 북한이 한국에 더 큰 위협일 수 있는 단거리 미사일을 계속 발사하더라도 제재를 완화해주자는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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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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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문재인 정부는 초기부터 비슷한 인식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레드 라인(임계선)’을 묻는 질문에“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 라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레드 라인은 말 그대로 더는 인내할 수 없는 선이다. 통상 이를 넘으면 비무력적 방법에서 무력적 방법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文 “‘레드 라인’은 장거리에 핵탄두”



이런 부담이 따르는 레드 라인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 자체가 문제였던 데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레드 라인이 장거리 미사일에 그어져 있다는 데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면 장거리가 아니라 단거리 미사일로 한국을 때리는 건 레드 라인을 넘는 게 아니라는 뜻이냐”는 반문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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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왼쪽). 사진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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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8년 3월 당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대북특사단을 이끌고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뒤 귀국해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음을 확약했다”고 밝혔다.

만일 어떤 무기도 남측에 쓰지 않는다는 당시 김정은의 ‘확약’을 지금도 믿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레드 라인은 여전히 장거리에 그어져 있는 것이라면,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계속 쏴대더라도 제재를 완화해주자는 제안을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적어도 일관성은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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