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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중국 헝다 ‘폭탄 돌리기’, 356조 빚더미 압박에 일촉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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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헝다 1,400억 원 채권 이자 지급 시한]
①달러채 23조 원, 올해 이자만 7,800억 원
②폰지 사기로 번지나...눈덩이 피해 우려
③”中 경제 문제없다”, 손절매 나선 정부
④쉬자인 ”빚 갚을 것” 파산위기에도 당당
한국일보

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 2위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의 광둥성 선전 본사 앞에서 23일 공안과 경비원들이 주위를 살피고 있다. 선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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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 부동산재벌 헝다(恒大ㆍEvergrande)그룹이 ‘폭탄 돌리기’에 나섰다. 23일 지급기한인 채권 이자 1,400억 원을 비롯해 356조 빚더미의 압박이 시작됐다. 채권자, 채무자, 금융당국 어느 쪽도 아직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진 않았지만 일촉즉발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①급한 불 꺼도 더 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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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중국 광둥성 선전 헝다그룹 본사 앞에 보안요원들이 배치된 가운데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선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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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다가 이날 갚아야 하는 1,400억여 원은 달러채 이자 985억 원(약 8,350만 달러)과 위안화 채권 이자 425억 원(약 2억3,200만 위안)이다. 회사 측은 전날 긴급성명을 내고 위안화 이자에 대해 “모두 갚겠다”고 밝혔다. 반면 달러채 이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헝다의 달러 채권 총액은 200억 달러(약 23조6,000억 원)가 넘는다. 주로 홍콩법인을 통해 해외에서 발행한 것이다. 규모로만 치면 총부채(356조원)의 10%에도 못 미친다. 물론 이자 지급일이 지나도 30일간 유예를 두기 때문에 당장 디폴트로 넘어가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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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정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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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장의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달러 채권 이자 지급여부는 헝다의 상환능력을 가늠할 중대한 지표다. 게다가 헝다는 올해 말까지 이자로만 6억6,800만 달러(약 7,878억 원)를 내야 한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헝다가 이자 완전 변제가 아닌 채무조정이나 지급연장 등 모종의 양해를 통해 시간을 벌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헝다가 채권자와 어느 선까지 합의를 볼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②폰지 사기로 번지나, 눈덩이 피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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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이 22일 중국 베이징 헝다시티플라자 벽에 그려진 헝다그룹의 부동산개발 프로젝트 지도 옆을 지나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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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슈칭 중국 은행감독위원회 주석은 2018년 “수익률이 10%를 넘는다면 원금 전액을 날릴 각오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를 비웃듯 헝다가 최근 판매한 금융상품은 수익률이 최대 25%까지 치솟았다. 다단계 폰지 사기에 걸려든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헝다가 채권 이자를 갚으려 위험한 상품을 팔아 자금을 조달했다”고 전했다.

이외에 헝다의 협력업체는 8,000여 개, 그와 연관된 일자리는 380만 개로 추산된다. 헝다가 파산할 경우 건설과 부동산이 중국 경제성장과 고용을 견인하는 ‘시멘트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부동산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9%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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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정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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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다가 달러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저당 잡힌 홍콩의 부동산이 빈 껍데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해외 투자자들이 헝다 채권을 사들이면서 믿음이 덜 가는 중국 본토의 부동산 대신 홍콩의 자산을 선호한 탓이다. 중국 자커뉴스는 “홍콩의 일부 담보물을 살펴봤더니 이름만 있는 유령회사였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문제가 생기면 정부 주도로 채무부담을 배분해온 터라 미국과 달리 파산법에 구체적 청산 절차가 미흡한 점도 걸림돌이다.

③”중국 경제 문제없다”, 손절매 나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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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헝다센터 건물 앞에 22일 오성홍기가 걸려 있다. 상하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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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매체들은 당장 돈줄이 궁한 헝다의 선택지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빚을 천천히 갚든가, 아니면 부동산을 팔아서 메우는 방식이다. 급격한 파산 절차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보유한 부동산 가치가 더 떨어져 채무 변제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헝다는 중국 전역에 2억9,300만㎡(8,863만 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이에 헝다 사태의 파급력을 평가절하하며 손절매에 주력했다. 봉황망은 “헝다는 중국 경제를 대표할 수 없는 일개 업체에 불과하다”며 “문제의 근본이 그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리스크가 드러나 합리적으로 해결되면 경제 전반에 악재가 아니라 호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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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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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과학원에 따르면 올해 주요 부동산 업체 122개 가운데 정부가 제시한 부채 한도 레드라인을 어긴 곳은 17개에 불과했다. 대다수 기업이 부채를 줄여 건전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푸링후이 국가통계국 대변인은 “주택은 투기대상이 아니라는 원칙을 헝다 사례에도 고수하며 부동산 전체의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정부가 이번 사태를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정책 수단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④”빚 다 갚을 것”, 당당한 쉬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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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다그룹 창업주 쉬자인 회장.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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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헝다 파산위기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만 정작 당사자인 창업주 쉬자인 회장은 전혀 거리낄 게 없다는 당당한 표정이다. 쉬 회장은 추석 연휴 기간 회사 직원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전례없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헝다는 암흑의 시기에서 조속히 벗어나 작업과 생산을 전면 재개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완성된 건물의 품질을 보장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심지어 “난 가진 것이 없어도 되지만 부동산 소유자의 재산은 한 치라도 줄어들어선 안 된다”고도 했다. 쉬 회장의 자택 가격은 8억 위안(약 1,457억 원), 보유 현금은 400억 위안(약 7조2,860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매체 왕이는 “빚이 많지만 헝다는 그보다 더 큰 회사”라며 “쉬 회장은 도망가지도, 그럴 필요도 없다”고 강변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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