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백인과 흑인 노예? 말 타고 이민자 단속하는 미국 국경순찰대…바이든 이민정책 도마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미국 텍사스주와 멕시코의 국경 지대인 델리오의 리오그란데 강변에서 지난 19일(현지시간) 국경순찰대가 말을 타고 아이티 이민자들을 쫓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민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국경에서 말을 탄 미 국경순찰대원들이 아이티 난민들에 채찍을 휘두르는 장면이 방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을 통해 퍼지면서다. 민주당은 22일(현지시간) 인권을 무시한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이 그대로 펼쳐지고 있다고 비판했고, 공화당은 정부가 급증하는 이민자들을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민 정책은 물론 외교, 안보, 무역 등 대다수 영역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비판 여론은 지난 19일 텍사스주와 멕시코의 국경 지대인 델리오의 리오그란데 강변에서 국경순찰대가 이민자들을 단속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불거졌다. 말을 탄 순찰대원들은 강을 건너온 아이티인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며 윽박질렀다. 아이티 난민들은 말을 피하려다 넘어지고 채찍에 맞지 않으려 머리를 감싸기도 했다. 그중에는 어린 아이도 보였다. 한 아이는 말에 밟힐 뻔 했다.

이번 단속은 리오그란데강 인근에서 난민 신청 절차를 기다리는 인원이 1만4000명까지 늘어나자 국토안보부가 난민 캠프를 없애겠다는 방침을 세우며 진행됐다. 600명 더 증설된 국경순찰대는 리오그란데강 다리와 댐 배수로까지 차단했다. 아이티행 전세기를 동원해 불법이민자를 돌려보내면서 현재 난민은 8000여명 수준으로 줄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급증한 난민들은 브라질, 칠레 등 인근 남미국가에서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왔다. 지난 7월 대통령 암살 등 국정 불안 사태가 이어지자 더 많은 사람들이 아이티를 떠나고 있다.

하지만 이민자 단속이 지나치게 비인간적이어서 전임 트럼프 정부 시절보다 더 혹독해졌다는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미 매체들은 이 모습이 과거 백인이 흑인 노예를 학대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다.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의 데릭 존슨 의장은 “아이티 난민들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순간들의 일부를 보여준다”고 했다.

난민 캠프에서 제대로 된 심사를 받지 못하고 바로 아이티로 돌아가야 하는 이민자도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민자 옹호단체인 아이티브리지얼라이언스의 굴라인 조제프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순진하게도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 이민자들에 더 나은 대우를 해줄 것이라 희망했다”면서 “이전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더 나빠졌다”고 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거세졌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바이든 정부는 인종 혐오적이며 난민법을 무시하는 트럼프식 정책을 지속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말을 탄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다룬 방식은 끔찍했다. 국토안보부가 이 문제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화당도 이민정책을 두고 날을 세웠다. 바이든 정부의 안이한 이민정책이 이민자 급증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22일 미 의회 청문회에 참석한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은 공화당 의원들의 집중포화를 받아야 했다. 조시 하울리 공화당 의원은 “현 정부는 마요르카스 장관이 국경에서 만들어낸 위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비판의 중심에 섰다. 대선 캠페인 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의 비인도적 난민·이민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취임 8개월이 지난 현재 그 또한 트럼프의 이민 정책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정부가 축소해놓은 연간 난민 수용인원 1만5000명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21일 유엔총회 연설 당시 중국을 겨냥해 인권 문제를 거론했지만 정작 미 국경에서 벌어진 이민자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민 정책 뿐만 아니라 외교, 무역 등 대다수 분야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유산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동맹을 중시하겠다면서도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 동맹국들과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고, 동맹국들과 사전 협의도 없이 호주·영국과의 3자 동맹인 오커스(AUKUS)를 발족해 프랑스와 불화를 일으키는 등 일방적인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미국이 돌아왔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일성은 8개월이 지난 지금 정책으로 전혀 이어지지 않은 채 미사여구로만 남아있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더 온화하고 친절한 이미지만 덧씌웠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 [뉴스레터] 식생활 정보, 끼니로그에서 받아보세요!
▶ [뉴스레터]교양 레터 ‘인스피아’로 영감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