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회사의 사업기회 가로챘나?…공정위 ‘최태원 고발’ 카드 꺼내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최태원 SK그룹 회장. SK그룹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SK실트론 사건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는 조사에 착수한 지 3년여 만에 ‘최태원 회장 고발’이라는 강수를 뒀다. 최태원 회장이 회사의 좋은 사업기회를 가로채 부당한 이득을 봤다는 취지다.

공정위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일종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에 적용한 ‘사업기회 제공’이라는 공정거래법 조항의 관련 판례가 전무한 탓이다. 참고할 만한 법리가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공정위 사무처가 오랜 시간을 들인 끝에 고발 카드까지 꺼낸 만큼, 설득력 있는 논리와 이를 뒷받침할 물증을 확보했을지 주목된다.

SK실트론 지분 29%은 사업기회?


이번 사건의 시발점은 SK㈜가 SK실트론의 지분 일부를 최태원 회장에게 양보했다는 의혹이다. SK㈜는 2017년 ㈜LG가 들고 있던 실트론 지분 51%를 주당 1만8319원에 인수하면서 경영권을 확보했다. 문제는 나머지 지분이다. SK㈜는 유리한 조건에 남은 지분 49%를 모두 매입할 수 있었음에도 그 중 19.6%만 사들였다. 나머지 29.4%는 최 회장에게 넘어갔다. 당시 해당 지분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빠져 30% 할인된 가격인 데다, 당장 많은 현금이 필요하지 않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형태여서 더욱 의혹이 짙었다.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지분 29.4%가 ‘사업기회’에 해당하는지다. 공정위 사무처는 이번 사건에 공정거래법상 총수 사익편취 조항 중에서 ‘사업기회 제공’ 혐의를 적용했다. SK㈜가 회사에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최태원 회장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문제는 해당 지분이 실트론에 대한 SK㈜의 경영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SK 입장에서는 “경영과는 관련이 없는 소수지분으로 사업기회가 아닌 단순 자산”이라고 반박할 여지도 있는 셈이다. 반면 공정위는 SK㈜가 지주회사라는 점에 초점을 둘 가능성이 높다. 지주회사의 주요 수입원이 배당수익인 만큼, 소수지분도 그 자체로 사업기회가 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위원회의 판단은 일종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이제껏 공정위가 사업기회 제공 혐의를 적용해 제재한 사례는 2019년 대림그룹이 유일하다. 당시 대림산업은 대림그룹의 호텔 브랜드 ‘글래드’(GLAD)에 대한 권리를 총수 일가의 개인회사인 에이플러스디에 넘겨 문제가 됐다. 위원회는 해당 사건의 사업기회를 ‘글래드 브랜드를 소유·사용·수익할 수 있는 기회’로 정의했으며, 심의 과정에서 사업기회 개념의 범위가 주된 쟁점이 되지는 않았다.

한겨레

<한겨레>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불투명한 수익성…입증 어떻게?


지분의 수익성도 하나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은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넘긴 경우에 한해 제재하도록 하고 있다. 대림그룹 사건의 경우 브랜드 수수료나 감정가 등 명확한 숫자가 있었다. 이익의 상당성을 입증하기 한층 수월했던 셈이다.

SK실트론 사건의 경우 이처럼 간단치는 않을 전망이다. 명시적으로 실현된 이익이 없는 탓이다. 실제 최태원 회장은 해당 지분을 팔아 차익을 실현하거나, SK실트론으로부터 배당을 받은 적이 없다. 투자 시점에서 이익 여부나 규모를 예측할 수 있었는지도 관건이다. SK 쪽은 반도체 시장의 변동성이 큰 탓에 실트론의 수익성이 명백하지 않았다는 논지를 펼 공산이 크다.

다만 이는 SK가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최 회장보다 먼저 SK㈜가 투자를 단행한 만큼, 실트론으로 볼 수 있는 이익이 크다는 회사 내부 판단이 선행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실사 결과 SK㈜는 실트론의 가치가 3~4년 만에 약 2배로 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정위 사무처도 비상장사인 SK실트론의 기업가치 변화와 당시 내부 예측 자료 등을 보여주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최태원, 대표이사인데도 이사회 생략…약점 될듯


상법에 있는 ‘사업기회 유용’ 조항이 어떤 역할을 할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공정거래법과 달리 상법의 해당 조항은 절차적 정당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회사의 이사는 직무 수행 과정에서 알게 된 회사 정보를 활용한 사업기회나 회사의 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업기회를 이용할 때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때 이사 중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SK㈜는 당시 이런 이사회 절차를 모두 생략했다. 최태원 회장이 회사의 대표이사 중 한 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문제의 소지가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SK 쪽은 실트론 지분 29.4%가 사업기회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사회 승인도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최 회장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이용했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론을 낸 적이 없다.

다만 이런 쟁점이 공정위 제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상법의 해당 조항과 공정위에서 다룰 수 있는 공정거래법 조항이 어떤 관계인지 아직 불분명한 탓이다. 상법 조항은 2011년, 공정거래법 조항은 2013년 도입됐다. 공정위 사무처는 공정거래법 조항이 상법과 같은 취지로 도입된 만큼, 상법상 절차적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