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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추석 상차림이 감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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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추석 상에 빼곡히 올라온 고기며 전이며 생선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몇 년간 채식을 지향하다 포기한 후로 여전히 고기를 꺼리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일까? 지키지도 못하는 나의 도덕을 남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유별나게 고기를 탐하는 젊은 조카들이 보기 싫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세대와 달리 고기를 맘껏 먹고 자란 젊은 세대는 채소와 나물에는 젓가락도 대지 않고 그저 고기를 찾는다. 사실 고기가 더 맛있지 않나? 하지만 나는 ‘입맛’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고약한 북유럽의 청어절임, 전라도 홍어도 몇 번 먹다보면 그 맛을 알게 되며, 채식을 하던 즈음 고기 굽는 냄새가 역겨웠던 적도 여러 번이기 때문이다. 입맛도 관념도 사실은 모두 만들어지는 것이다.

경향신문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육식을 줄여야 하는 이유로는 죽어서 상에 오르는 동물의 고통 외에 최근에는 사회적 이유가 더 강조된다. 밀림 개간으로 얻은 콩과 옥수수가 주로 육류 생산을 위한 것이고, 이로 인해 탄소 배출이 늘고 식량의 불평등한 배분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고기는 가난한 이들이 먹어야 할 곡물이다.

예전보다 훨씬 풍족하게 고기를 먹게 된 지금, 이런 풍요는 확실히 불평등을 가린다. C S 루이스는 일찍이 “우리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 부르는 것은 사실, 일부 사람들이 자연을 도구 삼아 다른 사람들에게 행사하는 권력이다”라고 말한 바 있거니와,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넓은 간선대로가 뚫린다고 좋아하던 시골사람들은 오히려 버스가 끊긴 구 도로를 선물로 받는다. 자가용이라는 부와 힘을 소유한 이들에게 이동능력을 바치는 것이다. 이처럼 풍요와 성장은 늘 자연이라는 매개체를 거쳐 불평등의 구조를 심화한다. 여기서 기후위기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이런 성장의 구조를 수십년 또는 한 세기 넘게 지속한 결과를 지구는 기후위기라는 형태로 되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위기의 진짜 원인은 개발과 성장보다는 불평등한 분배에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현실 정치는 기후위기 앞에서 기술주의와 성장주의라는 해법을 주머니 쌈짓돈처럼 버리지 못한다. 내게는 ‘대체에너지’라는 말조차 이 두 가지에 포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 있는 사람들마저 화석연료를 대신할 대체에너지를 빨리 개발하여 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해법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대체에너지와 같은 완충적 해법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분배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이 위기가 멈출까? 나는 이런 얘기를 하다가 지인들에게서 ‘에너지 탈레반’이라는 말까지 들은 적이 있다.

티머시 미첼의 <탄소 민주주의>는 특정 에너지와 결합된 사회 구조의 특성을 면밀하게 추적한 책이다. 에너지를 주로 석탄에 의존하던 시절, 석탄 채굴과 운송에 따른 특성 때문에 탄광, 철도노동자들은 자본에 대한 저항권과 단결권을 상당 수준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화석연료의 중심이 석유로 옮겨간 다음, 채굴보다는 운송과 정유가 훨씬 중요해짐에 따라 기술력과 자본력을 갖춘 거대기업과 국제금융이 힘을 가지게 되었고 산유국보다 자본 선진국이 에너지를 좌우하는 강자로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사회가 온통 대체에너지에 의존하는 시대가 되면, 가령 태양광 발전의 부산물은 차치하더라도 또 어떤 사회구조를 요구할지 모른다. 에너지 과식상태는 해소될 것인가?

개인의 소비 자제와 에너지 절감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에너지에 저당 잡힌 삶을 끊어내자고 호소하는 정치가 없는 한, 분배 정의가 성장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자각이 일지 않는 한,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고 절제와 고통에서 삶의 가능성을 찾는 기풍이 자리잡지 않는 한, 해법은 없어 보인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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