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밝혔다. 남은 임기 8개월 동안 남북, 북·미 관계 교착을 해소할 카드로 종전선언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그러나 종전선언을 통해 대화 재개를 모색하기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고위급회기에 참석해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에 대해선 “남북한 체제와 이념이 다른 두개의 나라라는 점을 서로 인정했지만 결코 분단을 영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교류도, 화해도, 통일로 나아가는 길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북한과 주변국의 협력을 통해 평화를 정착하는 ‘한반도 모델’을 강조하며 “국제사회가 한국과 함께 북한에게 끊임없는 협력의 손길을 내밀어 주길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북한 역시 ‘지구공동체 시대’에 맞는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참여 등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유엔 무대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한 것은 2018년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세 번째다. 올해는 특히 종전선언 주체를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으로 구체화했다. 지난해 화상으로 열린 제75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며 다소 원론적 언급을 한 데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임기 말 유엔총회에서 다시금 종전선언을 꺼낸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종전선언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이 ‘연내 추진’을 명시하는 등 줄곧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상에서 핵심 요소로 여겨져왔다. 이날 연설에서 “상생과 협력의 한반도를 위해 남은 임기 동안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교착 상태인 남북, 북·미 관계를 풀 마지막 남은 승부수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한반도 정세에서 종전선언이 돌파구 역할을 할 지는 의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기대해온 조속한 대화 재개는 커녕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 등으로 정세 불안정이 커질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20일 남한의 첫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폄훼한 장창하 국방과학원장 명의 글에서도 “남조선의 잠수함 무기 체계 개선 노력은 더욱 긴장해질 조선 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예고한다”며 군사적 대응을 경고했다.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북한, 미국, 중국 등 당사국의 호응 여부도 불투명하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종전선언에는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보여왔고, 대화 재개 조건으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제시하고 있다. 극한 전략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이 종전선언에 적극 동참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특히 한·미 간 종전선언 추진 관련 논의가 진전될 지도 미지수이다. 한국은 종전선언이 정상 간 ‘정치적’ 선언이라고 강조하지만 미국은 향후 평화협정 체결 등 법적 조치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에 촉각을 세워왔다. 최근 미국이 “(북한과) 의미 있는 신뢰 구축 조치를 모색하는 데도 열려있다”(14일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고 밝혔지만, 비핵화 진전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종전선언에는 여전히 회의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뉴욕/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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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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