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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추석 지나면 우유·빵·커피 값 다 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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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정부가 압박하니까 올리지 못하지만, 추석 연휴 이후엔 가격 검토가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한 유업체 임원의 말이다. 지난달 원유(우유 원재료) 가격이 리터 당 926원에서 21원(2.3%) 오른 947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정부는 유제품 가격 인상을 막기 위해 지난 8월 원유 가격 상승을 막아보려 했지만, 현행 원유 가격 결정 체계 하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우유가 들어가는 각종 유제품, 커피 음료, 빵 등의 가격 인상은 저지했다. 하지만 추석 전 물가 안정에 바짝 신경을 쓰는 정부 눈치를 보느라 업체들은 가격 인상을 미뤘지만,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추석 연휴가 지나면 우유·빵·커피·아이스크림 등 유제품 값이 전부 오를 전망이다.

◇낙농진흥회 이해에 따라 오르는 원유값

원유 가격을 최종 결정하는 기구인 낙농진흥회의 이사회는 총원 15명 중 절반 가량(7명)이 생산자 추천 인사로 구성돼 있다. 생산자 측이 불참하면 개회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권한이 센데, 이들은 현행 가격 결정 체계를 고수한다. 즉, 정부의 의지와 달리 원유 가격은 쉽게 오르게 돼 있다는 것이다.

우유는 다른 농식품과 달리 2013년부터 수요·공급이 아닌 생산비를 기준으로 가격을 정하고 있다. 원유가격연동제라고 한다. 우유 생산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이를 원유 가격에 반영하는 식이다. 대규모 설비가 들어가는 낙농 사업 회사들은 시장의 수요·공급 원칙에만 맡겨 놓으면 가격 하락 국면에서 낙농가들이 생산 기반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폭등 시기엔 소비자들이 큰 부담을 지게 된다는 논리도 펼친다.

문제는 생산비에 기반한 가격 체계가 가격 왜곡 현상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실제 흰우유 소비량은 2003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 27.0kg이던 1인당 흰우유 소비량은 2019년 26.7kg, 2020년 26.3㎏으로 줄었다. 소비(수요)가 줄면 가격은 내려야 한다. 그러나 생산 비용이 매년 오르는 상황에서 원유 가격은 인상되게 된다.

조선일보

유럽의 한 낙농민이 원유를 들어보이는 모습.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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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수입 관세 사라지면 국내 낙농업 위기

농림축산식품부는 원윳값 결정 체계를 어떻게 하든 개편하겠다는 입장이다. 시장 수요가 줄어 우유가 남아도는데 계속해서 가격이 오르는 왜곡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낙농 산업 중장기 발전 방안 마련을 위한 ‘낙농산업 발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연말까지 원유 가격 결정 체계를 개편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지금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4~5년 뒤 우리나라 유제품이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26년부터는 EU(유럽연합)·미국 등에서 들어오는 치즈와 우유에 적용되는 관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원유 가격은 kg당 1051원인 반면 미국은 477원, 유럽은 456원이다. 한국 우유가 2배 이상 비싸다. 지난 20년간(2001~2020년) 국산 원유 가격은 72%가 올랐다. 같은 기간 일본(34%)과 유럽(20%), 미국(12%) 등 주요국 대비 큰 폭으로 인상된 것이다. 그렇게 가격 경쟁력을 잃은 상황에서 수입산이 들어오면 한국 낙농업이 붕괴될 우려까지 제기된다.

◇생산자, “정부와 유업체의 여론전에 비난에 시달린다”

그러나 정부의 원유 가격 결정 체계 개편 시도에 생산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축산농가 생존권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물가 안정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연일 성명을 발표하며 “농식품부와 유업체가 결탁한 잘못된 여론전으로 인해 대한민국 우유가 비난을 받고 있다”고 했다. 협회는 “(생산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원유가격연동제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려면 국제 기준에 맞는 낙농제도 개편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단 정부는 낙농업계와 계속해서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지만, 당장 우유 가격 결정 체제를 손보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유를 재료로 쓰는 빵이나 과자, 커피, 아이스크림 등 2차 가공식품 가격 인상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김충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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