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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켜진 줄 모르고 “내가 다 죽여버렸지”…美갑부의 살인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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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21년 만에 유죄 평결 받은 재벌 3세 - 39년간 아내와 친구, 이웃 등을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으며 재판과 도피 생활을 이어온 미국 부동산 재벌가 3세 로버트 더스트(78)가 1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1심 법원에서 배심원단으로부터 친구 살해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았다. 사진은 2017년 1월 6일 법정에 출석했을 당시 모습. 2021.9.18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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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동산 재벌의 장남이자 39년간 3명을 살인했다는 의심을 받아온 70대가 범행 21년 만에 유죄 평결을 받았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캘리포니아주 1심 법원에서 배심원단은 미국 뉴욕의 부동산 재벌 상속자 로버트 더스트(78)가 2000년 12월 오랜 친구인 수전 버먼(여·당시 55세)을 살해한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된다고 평결했다.

1982년 아내 캐슬린 더스트 실종 이후 39년간 3개 주에서 3명을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아온 더스트가 법정에서 처음으로 받은 유죄 평결이다.

1982년 실종된 아내 살해 혐의를 받는 재벌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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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더스트(오른쪽)와 실종된 아내 캐슬린 더스트.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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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대형 부동산 회사 ‘더스트 오가니제이션’ 설립자인 조지프 더스트의 손자이자 시모어 더스트의 아들인 더스트는 1982년 뉴욕에서 아내 캐슬린 매코맥 더스트가 실종된 사건과 관련해 18년 뒤 진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아왔다.

버먼은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머리 뒤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는데, 저항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수사기관은 면식범의 소행으로 추정한 바 있다.

버먼이 더스트의 아내 살해 사건 은폐를 도왔고, 이후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는 이유로 더스트가 버먼을 살해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가짜 알리바이 제공한 동창 살해 뒤 도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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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전 버먼과 로버트 더스트. 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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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마피아의 딸이자 작가인 버먼이 더스트의 아내가 사라진 후 대학 시절부터 친구였던 더스트를 위해 가짜 알리바이를 제공했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버먼에게 더스트가 5만 달러를 건넸고, 이후 버먼이 ‘경찰에 사실대로 털어놓겠다’며 더스트로부터 돈을 더 받아내려 했던 것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더스트는 버먼뿐만 아니라 실종 당시 의대생이었던 아내 캐슬린과 2001년 텍사스주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중 이웃이었던 모리스 블랙까지 3명을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더스트는 아내 캐슬린 살해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았다. 당시 친구 버먼의 도움으로 알리바이가 있었고, 캐슬린의 시신 또한 발견되지 않아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말 뉴욕 사법당국이 캐슬린 실종 사건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면서 기소 위기에 직면하자 더스트는 호화롭던 삶을 내팽개치고 텍사스주로 도피생활을 떠났다.

‘말 못하는 여성’으로 변장…정체 알아챈 이웃 살해 뒤 “정당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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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부동산 재벌 3세 로버트 더스트 - 39년간 아내와 친구, 이웃 등을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으며 재판과 도피 생활을 이어온 미국 부동산 재벌가 3세 로버트 더스트(78)가 1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1심 법원에서 배심원단으로부터 친구 살해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았다. 사진은 2002년 3월 27일 이웃을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내 바다에 버린 혐의로 텍사스주 갤버스턴 법정에 출석했을 당시 모습. 2021.9.18 AP 연합뉴스


그는 가발을 쓰고 ‘도로시 시너’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신분을 위장했으며, 말을 못하는 장애인 행세를 하며 값싼 아파트에 세들어 살았다.

그러나 실수로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거나 술집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다 가발에 불이 붙는 사고를 겪은 뒤 변장을 포기했다.

텍사스주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중 2001년 친구가 된 이웃 모리스 블랙(당시 71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내 바다에 버린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나 그는 다툼 끝에 총기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 블랙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의 정당방위 주장이 인정됐고, 더스트는 시신을 훼손해 버림으로써 증거를 인멸한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블랙이 더스트의 정체를 알아냈기 때문에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전적 영화에 다큐멘터리까지…인터뷰 뒤 혼잣말로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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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올 굿 에브리씽’(All Good Things) 포스터.


아내 살해 혐의와 이를 은폐하는 데 도움을 준 친구까지 살해한 혐의로 도피 행각을 벌인 더스트의 사연은 2010년 영화 ‘올 굿 에브리씽’(All Good Things)으로 만들어졌다. 라이언 고슬링이 더스트(‘데이빗 마크스’로 각색) 역을 맡았고, 커스틴 던스트가 실종된 아내 역을 연기했다.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 대해 더스트는 꽤 만족했다. 어린 시절에 대해 대체로 정확하고 자신을 온정적으로 묘사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자신이 개를 죽이는 것으로 나온 데 대해서만 사실이 아니라며 강하게 반대했을 뿐이었다.

영화를 통해 자신을 변호할 수단을 찾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더스트는 이번에 다큐멘터리로 눈을 돌렸다. 그는 영화 제작자를 통해 그의 삶과 범죄 행각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접촉했고, 심층 인터뷰에 응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인터뷰가 그의 크나큰 자충수가 됐다.

인터뷰가 무척 만족스러웠던 걸까. 인터뷰 촬영이 끝난 뒤 그는 화장실에서 무심결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냐고? 그들을 다 죽여버린 거지,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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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더 징크스’. 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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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인터뷰 내내 차고 있던 마이크는 여전히 켜진 상태였고, 범행 자백이나 다름없는 혼잣말은 그대로 녹음됐다.

게다가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버먼 살인 용의자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와 더스트 간 연관성도 짚어냈다.

제작진은 더스트가 버먼의 죽음 1년 전에 보냈던 편지를 가져와 그에게 보여줬는데, 용의자가 보낸 메모와 더스트의 편지 모두 ‘비벌리 힐스’(Beverly Hills)의 철자를 ‘Beverley’로 적고 있었다. 필적 또한 동일했다.

다큐멘터리는 ‘더 징크스: 로버트 더스트의 삶과 죽음들’이라는 제목으로 2015년 HBO를 통해 방송됐다. 이 작품의 감독 역시 ‘올 굿 에브리씽’을 연출했던 앤드류 자레키였다.

더스트는 이 다큐멘터리의 마지막편이 방영되기 전날 뉴올리언스의 한 호텔에 숨어 있다가 체포됐다. 이때도 더스트는 가명을 쓰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라텍스 마스크로 변장한 채였다.

검찰 “자아도취에 빠진 사이코패스”…가석방 없는 종신형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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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단 돌아보는 로버트 더스트 -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잉글우드 로스앤젤레스 법정에 출석한 로버트 더스트(78)가 뒤를 돌아 배심원단을 바라보고 있다. 배심원단은 17일 더스트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2021.9.18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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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더스트를 가리켜 “자아도취에 빠진 사이코패스”라고 표현했다.

재판 기간 수감 중이던 더스트는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해 격리되면서 이날 법정에 출석하지 못했다.

이번 유죄 평결 직후 캐슬린의 친정 쪽 유족들은 더스트를 캐슬린 살해 혐의로도 기소하라고 뉴욕주 검찰에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1급 살인 유죄 평결에 따라 더스트는 내달 18일 선고 기일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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