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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77조원 잠수함 계약 날린 佛 “동맹국에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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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커스’ 후폭풍… 佛·中 강력 반발

佛, 호주와 맺은 잠수함 공급 계약 美가 핵잠수함 기술 이전해 무산

“동맹국을 이렇게 대하나” 격노

中 “노골적인 핵확산 행위로 첫 서방 사망군인 호주인 될 것”

상하이협력기구에 이란도 가입

조선일보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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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국⋅호주 3국의 안보 협력체 ‘오커스(AUKUS)’가 15일(현지 시각) 공식 출범하자마자 거센 후폭풍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호주에 넘겨주기로 결정하면서 호주와 맺은 잠수함 공급 계약을 허공에 날린 프랑스는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하며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오커스에 의해 협공을 당하게 된 중국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16일 라디오에 출연해 호주에 인도할 잠수함 제작 계약이 파기된 데 대해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오늘 무척 화가 난다. 이건 동맹국 간에 할 일이 아니다”라며 비난했다. 르드리앙 장관은 미국을 향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할 만한 행동”이라고 성토했다.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도 “미국이 동맹국을 어떻게 대했는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는 2016년 디젤 잠수함 12척을 호주에 공급하는 560억유로(약 77조원)짜리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프랑스는 ‘세기의 계약’이라며 큰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오커스 출범으로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됐다.

프랑스는 외교부 본부 지시로 주한 대사관을 비롯, 전 세계 공관의 자국 대사가 오커스 출범과 잠수함 계약 파기를 비판하는 긴급 브리핑을 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주미 프랑스대사관은 항의 차원에서 17일 체서피크만 해전 240주년을 기념하려던 파티를 취소했다. 체서피크만 해전은 미국이 독립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프랑스 함대가 영국 함대를 제압해 미국에 큰 도움을 준 전투로서 미·불 협력을 상징한다.

프랑스가 분노한 이유는 다층적이다. 우선 외교 분야에서 서방의 아시아·태평양 안보 전략에서 제외됐다는 위기감이 상당하다. 역사·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영어권 국가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는 굴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간 르피가로는 “트래펄가 해전의 패배를 태평양에서 당한 셈”이라고 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함대가 영국 함대에 무참히 패배했던 1805년 트래펄가 해전이 오늘날 태평양에서 다시 벌어진 것과 같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충격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호주에 인도할 잠수함을 제작하려던 나발그룹은 프랑스 정부가 대주주인 방산업체로 390년 역사를 갖고 있다. 나발그룹 본사와 협력업체의 직원 및 가족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프랑스는 특히 오커스 출범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며, 불과 몇 시간 전에야 미국 측이 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는 긴급 진화에 나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6일 “우리는 유럽 국가들이 인도·태평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프랑스는 특히 이것과 다른 수많은 사안에서 몇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필수적인 파트너”라고 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전날 오커스 창설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프랑스는 특히 역내 안보와 번영의 핵심 파트너이자 동맹”이라고 언급한 데 이어 블링컨도 프랑스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단단하다”고 했다.

EU(유럽 연합)는 오커스에 대해 직접적인 반응은 피하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1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엘리제궁으로 초청해 만찬을 했다. 둘의 만남이 끝난 후 마크롱은 오커스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메르켈 총리와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함해 유럽 내 협력에 대해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외무·국방장관이 전면에 나서 거친 반응을 쏟아낸 것과 달리 마크롱은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EU의 외교 사령탑인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6일 인도·태평양 지역과 협력을 강화하는 자체 전략을 공개했지만 오커스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오커스가 자국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7일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화상 연설에서 “국제 문제 해결에서 소위 ‘우월한 지위’에서 출발하거나 패권과 패도(覇道), 괴롭힘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며 “이른바 ‘규칙’을 기치로 국제질서를 파괴하거나 대립과 분열을 초래하는 행위에 반대한다”고 했다. SCO는 2001년 중국, 러시아 주도로 설립된 유라시아 8국 협력체다. 이번 회의에서 이란도 정식 회원국이 됐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엔 주재 중국 대표부를 이끄는 왕췬(王群) 대사는 16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에서 “미·영이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노골적인 핵확산 행위”라고 비난했다. 특히 왕 대사는 “IAEA에서 북핵과 이란 핵 문제가 논의되고 있지 않느냐”라고 했다. 호주가 미·영의 도움으로 핵 잠수함을 갖추는 것이 북핵과 이란 핵 문제 해결에 악영향을 준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호주가 군사적으로 무모하게 행동한다면 중국의 일벌백계 대상이 될 것”이라며 “남중국해에서 목숨을 잃는 첫 서방 군인도 호주인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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