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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필동정담] 지하철 경로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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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다산 정약용은 목민관이 돌봐야 할 사람으로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를 꼽았다. 하지만 다산은 '사궁(四窮)'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혜택을 주기보다 나이·재산·친척을 기준 삼아 식별하라고 했다. 60세 미만이나 10세 이상으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 사람, 재산이 풍족하거나 촌수가 멀더라도 친족이 있는 사람은 제외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선별적 복지의 원조 격인 셈이다.(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노사 간 임금단체협약이 13일 가까스로 타결됐다. 하지만 노사 갈등의 원인인 '빚폭탄'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작년 서울교통공사 적자는 1조1137억원으로 올해도 1조6000억원 손실이 예상된다. 특히 경로우대 등 눈덩이처럼 커지는 '무임승차' 비용이 골칫거리다. 전국 6개 도시 지하철의 무임승차 규모는 2016년부터 5년간 2조7708억원이다. 서울도 매년 3400억원씩 손실을 보고 있다.

1980년대 초 도입된 경로우대는 원래 70세 이상에 요금 '50%'만 할인해줬다. 그러다 노인복지법 제정으로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만 65세 이상 무료'로 확대됐다. 당시만 해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3.9%였으나 올 8월 기준 16.9%로 늘었고 2040년엔 32.8%에 달할 전망이다.

지금처럼 돈 내는 승객은 줄어드는데 공짜 승객만 늘면 재정파탄은 시간문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경로우대제도 개선뿐이다. 일각에선 노인 복지 혜택 축소와 이동권 제약을 우려하지만 공사·지자체와 미래 세대의 부담을 생각한다면 마냥 외면할 수도 없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이나 미국·영국에선 소득에 따라 일정액을 내거나 요금을 할인해주는 지자체가 대부분이다. 우리도 현실에 맞게 소득·연령대별로 제도를 손질하는 게 옳다. 노인들이 사회적 존경보다 '지공거사(地空居士·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노인)'로 조롱당하는 현실에서 이젠 벗어나야 하지 않겠나.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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