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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 (일)

[유수경의 무비시크릿] 지금 당신이 만나야 할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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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박정민과 임윤아가 환상 호흡을 뽐냈다. '기적'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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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가 재밌어?" 영화 취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누구나 공감하고 재미를 느끼는 영화들도 있지만 대개는 '개인의 취향'이 크게 작용하기에 쉽사리 답을 하기 어렵다. 리모컨으로 채널만 돌리면 볼 수 있는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는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기적'을 조심스레 추천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 같아서다.

'기적'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역 양원역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양원역은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낸, 대한민국에서 제일 작은 기차역이다. 다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탄생됐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 기대감이 크진 않았다. '기적'이라는 제목, 영화의 소개글에서도 느껴지는 '예측 가능한' 따스함 때문이다. (아마 많은 예비 관객들이 그럴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시작부터 기분 좋은 배신감을 안겨준다. 예상을 빗나가는 코미디와 추억을 소환하는 배경,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의 활약이 이어져 몰입도를 높인다.

웃음의 중심축에는 박정민과 임윤아의 환상 호흡이 있다. 박정민은 기차역이 유일한 인생 목표인 4차원 수학 천재 준경을 연기한다. 준경의 친구이자, 거침없는 행동파 라희 역을 임윤아가 맡았다. 고등학생 역이라 박정민은 출연을 망설였다지만, 십대를 연기한 두 배우는 전혀 이질감이 없는 모습으로 극에 녹아들었다.

여자에 관심 없고 무뚝뚝한 준경에게 먼저 다가서는 라희는 수동적 여주인공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공격적인 라희의 호감 표시에 계속해서 방어하던 준경은 결국 백기를 들고 만다. 솔직해서 더 사랑스러운 라희의 매력을 임윤아가 완벽히 살려냈다. 특히 방 안에서 단둘이 영화를 보는 장면은 관객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귀엽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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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과 이성민이 부자 연기를 펼쳤다. '기적'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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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우가 웃음을 견인한다면 후반부의 감동은 이성민이 담당한다. 그는 준경의 아버지이자 원칙주의 기관사 태윤을 연기했다. 매일 새벽 5시 30분 출근 도장을 찍고, 규정은 반드시 지키는 융통성 없는 인물이다. 아들 준경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속내를 숨기고 무뚝뚝함으로 일관한다. 기차역에 집착하는 아들 때문에 화를 내지만 아버지에겐 남몰래 숨기고 있는 아픈 비밀이 있다.

준경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김강훈은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공효진)의 아들로 등장해 큰 사랑을 받았던 아역 배우다. 짧은 등장에도 '천재 아역'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보여준다. 준경의 누나 보경을 연기한 이수경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박정민은 임윤아 이수경 이성민은 물론 마을 주민들로 분한 조연 배우들과도 극강의 케미스트리를 자랑한다.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도 작품의 완성도에 일조했다. 임윤아는 실제로 조부모님이 영주 주민이었음을 고백한 바 있다. 처음 도전하는 사투리 연기였지만 노력과 연습을 거듭해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경상북도 봉화 출신인 이성민은 윤아의 사투리 연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곁에서 지켜보던 박정민이 부러워했을 정도다.

1980년대를 완벽하게 되살려낸 레트로한 볼거리도 관람포인트 중 하나다. 생활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준경과 라희의 집, 카세트 테이프와 같은 아날로그 소품들, '유머 1번지' '장학퀴즈'와 같은 프로그램이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윤아는 기억에 남는 의상으로 멜빵바지를 꼽기도 했다.

소녀시대 멤버 티파니는 임윤아를 응원하기 위해 시사회에 참석했다가 펑펑 울었단다. 임윤아는 "영화가 끝난 뒤 집에 가서도 언니에게 연락이 와서 '이건 모두가 봐야 하는 영화야'라고 이야기하더라"라고 회상했다.

'기적'은 단순히 마을 주민들이 기차역을 세우는 것만을 두고 지어진 제목이 아니다. 이 작품은 우리네 일상 속에도 기적은 존재함을 슬며시 알려준다. 무심코 흘려보내는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반짝거리고 소중한 순간인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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